◎“얼마가 정답이냐” 눈치/“고사작전” 반발기류도민자당이 점차 「재산공개의 태풍권」안으로 접어들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새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개혁분위기에 편승,인사파문의 회오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민자당내에는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위기감이 점차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영삼대통령이 강력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명분과 당위성에 눌려 겉으로는 뚜렷한 거부감을 표시하지는 못하는 실정이지만 일부 민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반발의 기운까지 감지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함께 「부자의원」들 사이에서는 『어느정도면 적정선이 되겠느냐』며 당직자들에게 문의하기도 하는 등 동료의원들의 「답안지」를 엿보는 눈치작전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속도늦추기 인상
○…지난 5일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소속의원 전원과 당무위원급 이상 당직자의 재산공개를 결정한 민자당은 당내의 「이상기류」 때문인듯 『재산공개의 범위요령 내용은 당무회의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친뒤 협의에 따라 실시한다』며 애초보다는 속도를 늦춰잡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민자당은 당초 재산공개의 시기를 내주로 잡았으나 일단 청와대 비서진과 정부 부처 장·차관의 재산공개가 끝난 다음으로 고쳐잡는 등 다소나마 충격을 완화해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김종필대표는 8일 확대당직자 회의에서 「의원 재산공개가 결국 인민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당내외의 시각을 의식,『집권층이 변화를 스스로 엮어나가려는데도 사회여론은 이를 「신판 인민재판」으로 잘못 이해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의지를 갖고 일관되게 이행해나가면 여론도 이해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재산공개를 통한 정치권의 자정을 강조하고 있는 최형우 사무총장은 『당총재인 대통령이 재산공개를 했고 국무위원도 이에 따르는 마당에 국회의원이 재산공개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의심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당내 이견에 쐐기를 박고 있다.
최 총장은 또 『재산이 수천억원이라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만 신고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재력이 탄탄한 일부 의원들이 갖고 있는 우려를 일소하기도 했다.
○“가족 합치면 3천억”
○…당수뇌부의 진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속의원들의 불안감은 여전한게 사실이어서 「적정한 재산의 규모가 어느 정도냐」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재산 형성과정의 정당성 여부에 관계없이 재산이 많은 의원은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때문에 몇몇 당직자들에게는 벌써부터 『50억∼60억원 정도로 공개하면 되느냐』 『부모 형제까지 합치면 3천억원에 이르는데 이를 다 공개해야 하느냐』는 등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몇몇 의원들은 『국회에 등록한 재산목록 이외에 별도의 재산이 있는데 이를 공개해도 뒤탈이 없겠느냐』는 어처구니없는 고민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 또다른 의원들은 현재 재산공개에 대비,보좌관 등을 동원해 부모 형제들의 재산목록을 철저히 조사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인사파문에서 공직자들의 「감춰진 재산」까지 들통난 점을 고려,사전 예비조치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한편 재산공개의 적정선에 대해서는 대략 20억원 내외가 당내의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한 의원은 이와관련,『지나치게 많아도 문제가 되겠지만 너무 적어도 오히려 이상한 시각으로 비치게 될 것』이라며 『김영삼대통령이나 황인성총리의 재산이 20억원 안팎이었다는 점이 참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때 낙선 우려도
○…김 대통령이 표방한 「깨끗한 정치」의 슬로건 아래 재산공개에 거부의사를 밝힌다는 것은 곧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며 「부패정치인」으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현실상황으로 인해 재산공개 방침에 대한 반발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분명히 잠재해 있는게 사실이다.
특히 의원 재산공개와 민정계 등 3공이후 여권에 몸담아왔던 정치인들을 대폭 물갈이한다는 의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당내에 확산되면서 아직은 미약하지만 점차 반발기류가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로는 「신중론」의 모습을 띠고 있는 반발기류가 내세우는 주된 논리는 『우리의 정치풍토가 현실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선거에 낙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한 민정계 의원은 『공천 심사때는 가동자금이 적은게 결격요인이 됐는데 이제와서 재산이 많은게 정치적으로 불리하게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재력가로 소문이 난 의원들은 지역구민의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인데 재산공개를 통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엄청난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또 『공개된 재산이 수십억원에 이른다해도 상당부분은 정치자금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 암담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같이 재산공개에 따른 부작용의 측면외에도 원칙적 측면에서 반론을 펴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한 민정계 인사는 『아무리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개혁정책이라지만 법에도 없는 일을 사실상의 힘으로 강제하는 것 자체가 바로 군사정치문화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있는 사람을 마치 죄인처럼 몰고 가는게 개혁이 아니다』라며 『재산공개의 필요성이 있으면 기왕의 재산등록법을 개정,정상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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