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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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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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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가 오늘 3월8일 음악원의 첫 신입생 입학식을 가짐으로써 개교를 한다. 우리 모두 그 신입생이 된 마음으로 함께 기뻐할 일이다.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은 정원이 미달인채 문을 연다. 정원 1백33명에 신입생은 98명이다. 알려졌다시피 지원자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입학시험 5.5대 1의 경쟁률이었다. 상대평가제가 아닌 절대평가제로 일정 수준미달은 아예 뽑지 않았다. 이 엄격주의가 이 학교의 장래를 투명하게 한다. 고교 3학년 미만의 학력소지자에게 예술종합학교에 응시할 자격을 주기위한 영재선발시험에서는 1백24명의 응시자중 단 한명도 합격하지 못했다. 영재가 없었던 것은 서운한 일이지만 무합격자라는 기록은 상쾌하다. 과대평가로 부풀어져 있는 풍선에 바람을 빼는 일이요 수준의 기준을 높이뛰기의 바에서 장대높이뛰기의 바로 높이는 일이다.

실기전형에서 수험생과 감사위원 사이의 커튼을 없애고 학부모를 참관시킨 공개주의도 당당했다. 아무 잡음이 없었다. 커튼은 채광을 막는다. 그래서 우리 음악계 전체가 백일하에서처럼 환하지 못했다. 이 불신의 벽의 철거는 우리 음악계의 풍토쇄신에 기여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음악원의 개원은 음악계 전체를 교육시키는 역할도 한다.

예술종합학교 설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잇따른 예능계의 입시부정이었다. 음악원의 엄격주의와 공개주의는 음악이라는 예술 자체의 권위의 회복이다. 결과적으로 악질이 양약을 낳았다. 우리의 예술은 병때문에 살아나게 되었다.

예술종합학교는 궁극적으로는 과열이다 싶을 정도로 격심한 예능계 대학 지원자의 경쟁이 낳은 것이다. 실상 문화예술에 과열이란 없다. 예술에 대한 국민의 열의는 뜨거울수록 좋다. 그 과열이 바로 우리나라의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재산화한 것이 예술종합학교다. 이 열기가 이 학교을 키워갈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천재의 영분이다. 대문화시대는 천재들의 행진이었다. 한나라의 전통의 운반자는 문화요 또한 한나라의 전통의 선도자도 문화다. 천재적인 예술가는 기수처럼 맨앞에 서서 간다. 예술종합학교는 예능실기자의 천재교육기관이다. 입학생은 이 평준화시대에 선택된 사람들이다. 첫 신입생은 이 학교의 역사의 첫장을 쓰는 사람들이요 그리고 우리 예술사의 장을 바꿀 사람들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우리는 특히 음악을 믿는다. 다른 예술분야보다도 음악에 우리 국민은 자신이 있다. 세계적인 대가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것이 음악분야다. 예술종합학교는 앞으로 연차적으로 미술,연기,영상,무용,전통음악원 등이 잇따라 개원하게 된다. 그중에 음악원이 맨먼저 개원한 것은 다른 분야의 세계화에 음악의 선도역할을 기대한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다른나라의 음악원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 프랑스의 국립파리음악원이다. 1784년 왕립음악연극학교로 발족되었다가 대혁명으로 폐쇄된뒤 1793년 새로 시작한 것이 여러단계의 개편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꼭 2백주년을 맞는다. 이탈리에서는 밀라노의 베르디음악원이 1808년에 설립된 것이지만 파리음악원이 모델이었다.

파리음악원은 그동안 우수한 연주가들을 대거 배출했다. 특히 작곡분야에서는 베를리오즈,드뷔시,구노,비제,토마 등 프랑스의 대가들이 모두 이 음악원 출신이다. 토마는 모교의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드뷔시는 10세때 입학해 10년간 재적했고 베를리오즈가 대표작인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재학중일 때였다. 「환상교향곡」은 이 음악원에서 초연되었다.

프랑스의 로마대상은 유명하다. 프랑스 아카데미가 유능한 예술가들의 양성을 위해 회화,조각,건축,음악 등 각 부문에 걸쳐 콩쿠르를 실시하여 1등상 수상자를 정부 장학금으로 르네상스문화와 접할 수 있는 로마에 유학 보내는 제도다. 음악은 작곡에 한했고 대개 파리음악원의 수석졸업생에게 영예가 돌아갔다. 앞에 열거한 작곡가들은 모두 로마대상 수상자들이다. 1803년부터 시작된 음악부문 상은 점차 심사에 잡음이 생겨 1968년에 폐지되었다. 유럽 여러나라에서도 이상을 본땄다.

지금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쟁쟁한 음악가들은 모두 줄리어드 등 외국음악원 출신들이다. 그리고 미국·유럽의 각 음악원에는 한국 유학생들로 득실댄다. 유럽에 비해 2백년 뒤늦은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외국으로 나가는 영재를 붙잡아 대가로 키워낼 수 있는 명문으로 어서 성장해야 한다. 대음악가도 이제 국산의 시대가 온다. 우리의 세계적 음악가들이 단기간으로나마 교수진에 참여해주는 것은 고무적이다. 로마대상 같은 상으로 우수학생은 국비로 해외에서 보충수학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종합학교의 성패는 무엇보다도 나라 전체의 문화의지에 달렸다.

예술의 전당이 제5공화국의 문화적 치적이라면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제6공화국의 문화적 업적이다. 소위 군사문화시대에 이런 문화주의의 기반들이 닦여졌다는 것을 문민정부는 명념해야 한다.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예술종합학교가 개교의 종을 울리는 것은 문화가 새정부에 보내는 경종이라 할 수도 있다. 문민정부는 문화에 대한 보다 큰 열의로 이 종소리에 화답하지 않으면 안된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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