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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돈」 안받기/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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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돈」 안받기/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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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전에 있었던 일이다.몇몇 재벌그룹의 총수들이 청와대로부터 점심초청을 받았다. 무슨 말씀이 떨어질까하고 총수들이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이런 저런 환담도중 느닷없이 『얼마전 Q그룹 회장이 보내온 봉투를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내 평생 그같은 거액을 직접 보기도 처음이고 또 만져보기도 처음이었다』고 사뭇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참석자들은 대통령이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에서 거액을 받고 감탄한 것인지,아니면 다른 재벌그룹들도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인지 도시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들은 회사에 돌아와서도 대통령의 동향을 살피랴 한동안 마음을 졸였다. 필자가 그 자리에 참석했었던 한 총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관련,오래전부터 두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하나는 역대 대통령이 재임중 정치인들을 포함,이곳 저곳에 전달하는 하사금 금일봉의 재원 출처이고 또 하나는 여당의 운영자금의 조달방법과 규모다.

여당이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며 운영한 것은 구 민주공화당부터다. 공화당은 당초 증권파동 등 소위 4대 의혹사건을 일으켜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사전조직해서 출발했고 64년부터는 당재정위원회가 자금을 조달했다.

대기업들도 정치자금을 내는데 재미를 붙였다. 수주·융자 등 상당한 특혜와 이권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개발과 좋은상품 제조에 신경쓰기 보다 암거래로 큼직한 특혜를 얻는 쪽이 훨씬 이득이었다.

이런 관행이 10월 유신때부터 청와대서 정치자금의 수금을 일원화,당운영비를 매달 내려보냈고 이것이 5∼6공 때도 이어져왔던 것. 특히 5공때는 청와대가 일해재단의 건립명목으로 헌금을 독려,협조가 시원치 않은 업체는 손을 보기도 했으며 6공의 경우 정주영 전 국민당 대표가 『매년 수십억원을 청와대에 헌금했다』고 터뜨리자 『불우이웃돕기에 썼다』고 애써 강변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대통령이 『5년간의 재임기간동안 기업인을 포함하여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단 한푼의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놀라운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것이 실천된다면 대통령이나 재벌이나 비밀거래와 검은돈에서 해방되어 대통령은 재벌에 대해 비정상적인 배려를 할 필요없이 오직 정도에 의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고 재벌 역시 권부나 정치쪽의 눈치를 보지않고 기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대통령의 검은 수입이 없게 되니 과잉지출도 없어지게 되어 우선 민자당에 매월 주었던 30억원의 지원금을 중단하고 민자당 역시 「깨끗한 정치」 「돈안드는 선거」를 위한 자구책,당개혁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봐야할 것이다.

정치를 하고 정당을 가동시키는데는 반드시 경비가 들게 마련이지만 오늘날 전세계 민주국가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정치비용과 정당운영비가 비싸게 먹히는 나라는 없다.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경비에 비해 정치의 생산성은 아직도 후진국과 같은 한심한 수준에 머물고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자당이 「돈안드는 정치」의 일환으로 유급당원을 반이상 줄이고 지구당 폐지를 검토하며 호텔정치 지양,화환안보내기,호화파티 자제 등을 실천키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개혁이자 쇄신방향이라고 보고 싶다.

평시에는 당을 정책기능과 최소한의 조직·선전기구만을 가동할 정도로 체중을 대대적으로 감량하고 선거 때는 각종 후원조직 등을 만들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당이 자금마련에 신경을 쓰지 않을 때 정치는 자연 바로 잡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의원과 당직자들의 재산공개 역시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장차 선거때 야당 등의 공격자료감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모양이나 깨끗한 정치를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무엇을 꺼리는가.

여당이 지구당까지 폐지하고 상근요원 등을 대폭 감축하며 재산공개를 수범하면 야당도 여론 등쌀에 자연 뒤따르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검은돈 안받기와 여당의 대대적인 집안 혁신의 실천을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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