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2월25일. 이날을 가슴벅차게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한국정치사상 첫 문민정부가 출범한 날이었다.다음달인 2월26일. 새정부 각료의 면면이 드러났다. 대부분 새로운 인물들이었다. 『진정 새시대가 시작됐다』는 실감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3월6일 청와대 기자실. 여성각료로 내각의 「신선함」에 일조했던 박양실 보사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사안은 박 장관의 부동산투기건이었다. 절대농지의 불법매입,위장전입에 의한 재건축 아파트구입,30세 아들 명의의 3백억원대 빌딩 등등….
이에 대한 박 장관의 해명과 기자들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됐다. 회견 시작전 많은 사람들은 솔직한 해명과 명쾌한 결말을 은근히 기대했다. 개혁을 내건 새정부에 대한 애정과 걱정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박 장관의 첫마디부터 부서져 나갔다. 『불과 1주일전만 해도 단순한 병원 원장과 옆집 아줌마에 불과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해달라』
상황이 아무리 곤혹스럽다하더라도 아줌마 운운은 한 나라의 장관으로서는 격에 맞지 않았다. 이는 또 스스로 장관 부적격자임을 공언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어진 다음 대목은 더 심각했다. 『병원에 오래 있어서 법을 잘 모른다. 농지를 사려면 주민등록을 옮겨야 한다기에 옮겼을 뿐이다. …하늘에 맹세코 투기를 한 적이 없다』
위장전입에 대한 절대 농지매입이 「법을 몰라서」라는 말로 해명될 수 있을까. 서울 인천 경기 김포 경남 거창 등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한 박 장관이 결백을 주장한다면 이를 믿을 국민이 있을까. 서울시민의 절반가량이 세입자인 현실에서 부동산 거래인 박 장관의 연신고소득이 1천8만원이라는 것은 도덕불감증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는 결코 죄가 아니다. 그렇다고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부마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공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거취는 대통령의 뜻에 따르겠다』는 박 장관의 「상황인식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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