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 신임 안기부장께.대단히 놀랐다는 말로,취임축하를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군인·비검경 안기부장이 나오리란 짐작은 했습니다만,교수 안기부장은 생각밖이었다는 얘기도 되겠습니다.
그러나,달리 생각하니,식견으로 보나,성품으로 보나,김 부장만한 문민 안기부장 적격자를 고르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안기부를 대수술한다는 눈 앞의 과제를 생각해서는,과연 적시적재라 할만도 합니다. 이른바 YS인사의 으뜸가는 성공사례라 해서 틀림이 없겠습니다.
이 말은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김 부장이 비군인·비검경 출신이라는 것만 가지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김 부장에게 거는 기대는 따로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나처럼 권력권 밖 저만치를 살아온 사람의 시각에서는,안기부란 나와는 발상이 좀 다른 사람들의 집단 같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행태가 느닷 없어서 종잡기가 어려웠다는 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 부장처럼,평소의 소신이 잘 알려진 이가 그 조직의 책임을 맡는다는 것만해도 한결 밝은 느낌이 듭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김 부장은 작년 대선 막바지에 나온 계간 『사상』의 대특집,「새 정부를 위한 정책제언」에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의 새 출발』이라는 긴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 글에서 김 부장은 6공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를 첫째로 협상상대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 못했고 유리한 상황적 여건을 활용하는데 실패했다,둘째로 대북 정책목표의 우선순위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없었다,셋째로 대북협상에 대한 국민의 진정한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국민이 바라는 것은 선언적 합의 아닌 실질적 실천이며,국민들 사이에는 통일지향적 정서보다 평화지향적 현실주의가 더 우세함을 지적했습니다. 그 결론은 흡수통일이나 대북 봉쇄강화 등의 「교조적 현실주의」와 「위험한 일괄타결 논리」를 배제하고 통일실현의 내적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들 김 부장의 지적과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늘의 대북정책은 어제의 대북정책을 반성하는데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김 부장의 입론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는 새정부의 새 대북정책을,일단은 불안감 없이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궁금하기는,김 부장의 그같은 식견과 소신이 새 대북정책에 어떻게 투영될 것이냐는 것입니다. 듣자니,정부 요로의 어떤 사람이 금년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말했다던데,이런데 대한 김 부장의 생각 역시 그렇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김 부장이 지난 연말 기고에서 밝힌 「통일을 향한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작」은 정부안의 심각한 의견조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불가피한 것처럼 보이는 그 정책 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김 부장이 지적했던 「협상상대의 실체」와 「상황적 여건」입니다.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인 정세판단입니다. 나라안과 밖의 형세를 잘 살펴서 흐름을 타되,흐름의 한계를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통일정책보다는 통일정세의 판단이 우선합니다. 이념적 통일지상론이 통일정책일 수 없는 까닭,그리고 김 부장이 지적한 「일괄타결 논리」가 위험하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김 부장에게 기대를 거는 까닭입니다. 안기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 역시 같습니다. 안기부의 대북·대외정보 수집과 분석,전달능력이 획기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안기부는 크게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수준 높은 전문가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법에도 없는 정치사찰·정치공작 따위로 손을 더럽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안기부의 기구를 어떻게 바꿀지,충원은 어떻게 할 지 등등은,나같은 비전문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김 부장의 취임 10여일은 앞에 말한 여망에 부응하는 것이라 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신문보도를 보면서 염려스러운 두가지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른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수산전말과 1심 재판결과입니다. 만일 여기 나타난 수사부진과 혼선이 대공수사력의 위축이나 왜곡,또는 그로인한 신뢰상실의 결과라면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안기부 개혁의 한 초점은 여기 모아져야 합니다.
다음은 이른바 「용팔이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초점은 안기부 개입여부로 좁혀져 있고,이미 안기부 전직간부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안기부를 개혁한다는 마당에,사건의 진상조사를 검찰에만 맡겨도 그만이겠습니까. 오히려 안기부가 자체조사로 옛 병과를 도려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사건의 자체조사가 새 안기부를 점치는 시금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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