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이래 1천4백18대/최장수는 인조때 최오길 12년10개월4일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김상철씨는 지난달 26일 부임한지 꼭 6일만에 퇴임해 「해방후의 최단명 시장」의 기록을 남기게 됐다.
정확히 취임식을 가진지 1백42시간만에 이임식을 한 김 전 시장의 단명기록은 「수서파동」으로 53일만에 물러난 박세직 전 시장의 기록을 크게 앞당긴 것이다.
김 전 시장은 특히 부임후 업무보고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장관사에 들어갈 날짜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차한 특이한 전례도 남기게 됐다. 김 전 시장은 또 시장부임후 공식적으로 단 1건의 결재도 하지못해 비서실 직원들마저 그의 사인을 못봤을 정도.
해방후 미군정하에서 김형민씨(86)가 초대 서울시장으로 임명된 이래 26대 김상철시장에 이르기까지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서울시장은 김 시장을 포함,모두 6명. 불도저시장으로 불렸던 14대 김현옥시장이 70년 와우아파트 붕괴참사로 물러났고 15대 양택식시장은 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여사가 저격당한 것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또 18대 박영수시장은 82년 지하철 3호선 건설공사장에 시내버스가 추락하는 바람에 시장자리에서 「추락」했다.
지금까지 최단명 시장기록 보유자였던 23대 박세직시장은 90년 12월27일 부임하자마자 수서지구 직장주택조합 파문에 휩싸여 재임 2개월도 못채운채 91년 2월18일 시장직을 그만두었다.
서울시장은 1395년 6월13일(태조 4년) 조선의 수도가 서울로 정해진뒤 성석린이 판한성부사로 보임된 이래 김상철시장이 1천4백18대째.
그동안 시장의 명칭도 판한성부사에서 한성부사→판윤→부사→관찰사→판윤→경성부사→서울자유시장→서울시장→서울특별시장으로 변천해왔고 특별시장으로는 49년 8월15일 관제개편과 함께 이기붕씨가 첫 취임했다.
조선시대에는 시장임명 당일에 쫓겨난 하루살이 시장도 영조때의 구윤옥 등 5명이나 된다.
반면 최장수 시장은 인조 14년∼효종 원년까지 재임한 최오길로 12년10개월간 자리를 고수했다. 해방후에는 15대 양택식씨가 70년 4월16일부터 4년6개월간 재직,최장수를 기록했다.
역대 서울시장중 유일한 민선시장인 김상돈시장은 시민의 손으로 시장에 뽑힌지 5개월17일만에 5·16으로 물러났다.
한편 4일 하오 2시 시청 대회의실에서 과장급 이상 직원 1백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임식을 가진 김상철 전 시장은 전날의 초조해하던 모습과는 달리 시종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김 전 시장은 이임사에서 『나의 과오가 신정부의 개혁정책에 걸림돌이 된 것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여러분들은 흔들림이 없이 업무를 수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전 시장은 그러나 『직원들은 물론 서울시민에게 꼭 할말이 있다』며 『개혁은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덮어주고 앞으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시장의 돌연한 경질로 잠시나마 시장의 공백인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한 서울시는 이날 하오 5시 백상승부시장과 내부 승진한 신임 우명규부시장의 이·취임식을 동시 실시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박정태기자>박정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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