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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가?/이인호 서울대 교수·서양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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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가?/이인호 서울대 교수·서양사(한국논단)

입력
1993.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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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지난 한세기간의 우리의 역사적 삶을 돌이켜 볼때 우리는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망국의 치욕과 탄압속에서도 민족정신을 지켜왔기에 우리는 강요된 분단의 멍에를 안은채 세계가 무시 못하는 중진국으로 발돋움했고,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는데도 성공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공화국의 번호가 바뀌게 되는 파란의 역사를 뒤로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전 사회주의권의 나라를,남미·아프리카 같은 곳의 사태를 생각할 때 우리의 자긍심은 한층 더해진다. 「21세기를 위한 준비」라는 새책을 내놓은 폴 케네디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희망적인 나라중의 하나이다.○경제우선주의 부작용

그러나 과거가 어떠했고 남과 비교해서 우리의 현재 처지가 어떠한가를 떠나서 앞을 생각하며 우리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그러한 자신과 긍지는 다시 불안과 수치심에 밀리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에 맞추어온 힘을 경제발전에 쏟았던 우리는 30년 사이 국민소득을 1인당 82불에서 6천불로 올리는 기적을 낳았고 「돈을 가장 흔히 쓰는 국민」이라는 인상을 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대신 우리는 세계에서도 생활비가 가장 비싼 나라중의 하나가 되어버렸고,값싼 노동력의 덕으로 수출시장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지역에서 나오는 값싸고 점점 질이 좋아지는 상품들이 전세계에 걸쳐 우리의 수출시장을 잠식하고 말았는데 보다 좋은 기술과 지식,그리고 창의력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일본이나 유럽의 선발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 축적되지 못한 것이다. 국내의 기업들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연구개발을 위한 기초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창의적인 효과를 얻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지속적인 교육과 연구를 통해 그러한 기초를 다지는 일은 기업이 아니라 대학이나 연구소들이 해야할 일이지 단기적 영리를 목표로 삼아야 하는 기업들에 남겨두어서는 안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가 추구해온 국가발전 정책의 기본적인 문제점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자본축적이 전혀 되어있지 못한 상태에서 외자에 크게 의존하는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했던 우리의 실정에서는 투자의 우선순위가 경제생산을 중심으로 하여 결정되는 것이 불가피했다. 국가적 삶에서나 개인의 삶에서나 가난의 극복과 지속적 발전이 최고의 명제였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바로 잘살아 보자는 한맺힌 욕구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은 바로 그 다음부터였다. 국민이나 지도자들이나 다같이 경제만 발전하면 모든 것은 다 자동적으로 해결될듯한 환상에 빠져들었고,경제발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해 필요한 방편일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음을 잊게 된 것이었다.

○그릇된 교육·문화정책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교육수준의 향상이 크게 기여했지만 교육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기에 앞서 국가정책의 차원에서는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기르는 수단으로서,개인의 차원에서는 취직을 하는데 필요한 졸업장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만 추구되고 정책화되었다. 경제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분야들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특히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하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고 느낄줄 알도록 일깨워주는 것을 존재 이유로하는 인문학 분야의 교육과 연구는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렸다. 정부가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솔선수범을 보였고 국민이 무의식중에 기꺼이 따랐던 대한민국의 정치철학은 사실상 철저한 경제유물론이었던 것이며,정권과 비판세력간의 투쟁도 사실은 이권을 중심으로한 계급투쟁의 성격을 지녔을 망정 근본적 철학적 입장의 차이는 아니었다.

문화분야에서도 가시적인 효과를 지니는 분야이면 약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분야는 전혀 도외시되었다. 방송을 들이는 것은 당연시해도 교육을 국제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노력은 없었다. 국제사회의 눈에 쉽게 노출되는 박물관들은 약간의 국가지원을 받아 발전했지만 공공 도서관들은 독서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무역고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적 중진국임을 우리는 자랑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모든 중요한 정보와 지식이 공급처가 될 수 있게 내용과 체계를 갖춘 도서관­정보센터가 전국에 한군데도 없는 참담한 실정이다. 도서관이 없는 상태에서 연구란 엄청난 인력의 낭비와 부정확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며 심한 경우 남의 것을 베껴내는 협잡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 속에서 창의력이 길러질 수 없으며 높은 기술과 정보의 수준에서 대외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힘이 나올 수가 없다.

경제발전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아도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기초 학문분야의 등한시는 이처럼 결국 역기능을 자아내게 된다. 정치와 사회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인문교육의 내용이나 수준은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 효과가 2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지연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단기적 여론동원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치인들은 그것을 무시할 수 있고,국민이 뒤늦게 그 잘못된 교육에 대한 대가를 몇배로 치르게 된다. 어릴적부터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계속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물리쳐서 입시에 붙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주입받았고,거짓이나 배신이 왜 안되는가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성장해서 성공하는 경우 타락한 정치인이 되고,실패한 경우 흉악범으로 전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줄 아는 엄격한 사고의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달콤한 이데올로기에 쉽게 현혹되고 도덕적 흑백론에 빠진다.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거창한 추상적 구호를 외치는 보다 실제로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위신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보장의 최저한선을 설정하고 계속 높여가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일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가 권력을 잡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환상에 빠지는가 하면 역으로 구호는 유세를 위한 것일뿐 선거후 현실은 다른 것이라는 철저한 냉소주의에 흐르게 된다.

○정신이 물질보다 중요

인문교육을 강화하고 도서관을 지으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니 무슨 잠꼬대인가 하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사람은 먹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는 정신적 존재이며 제대로 된 사람을 길러내고 정신적인 부를 생산하는 일은 물질적 부를 생산하는 일보다 더 어렵고 더 많은 정신적·물질적 투자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각성과 의식의 전환이 우리 사회에 일지 않고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정주영씨의 그 엄청난 재산이 정치에 낭비되는 대신 시청앞쯤에 세계적인 아산 도서관을 세우는 기금으로 쓰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물질의 힘에 대한 정신의 힘의 우위를 인정하는 정치의 새로운 장을 펴줄 것을 철학도 출신 새대통령에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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