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진료때 순서무시 예사/안면있고 수고비줘야 대접병원만큼 『안명이 있거나 돈봉투를 주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말이 뼈저리게 실감나는 곳은 없다. 가족의 생사가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약자 입장인 환자가족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부조리의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종합병원의 부조리는 대부분 다급한 환자 가족들에 의해 자발적인 형식으로 빚어지는데다 소개해준 친지의 체면을 지켜주어야 하고 앞으로 그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할 처지에서 환자 가족들이 입을 열지 않는한 그 실상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병원부조리는 초진을 받을 때부터 시작된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서 지물포를 운영하는 김모씨(37)는 지난해 12월 만성위경련으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어 도심의 모대학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측은 1차 의료기관의 진료소견서를 갖고 오지 않으면 보험처리가 안된다고 말해 동네병원으로 가 어렵게 진료소견서를 발급받아 다음날 상오 일찍 부인과 함께 이 병원 내과에 제출했다. 김씨는 이날의 하오 진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확인하고 대기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대기순번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간호사의 안내로 순서를 뛰어넘어 진찰실로 들어갔다.
화가 치민 김씨가 담당 간호사에게 항의하려 했으나 『소리치면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겠어요』라는 부인의 말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김씨는 이날 하오 4시께야 가까스로 2분간 진료를 받았다. 결국 8시간 가량을 병원에서 보낸 셈이었다.
반면 위궤양환자 윤모씨(38)는 최근 병이 도지자 수소문끝에 S대학 병원의 내과의사를 소개받아 찾아갔다. 인사를 끝낸 윤씨는 의사의 말대로 내과진료와 가정의학과 진료를 모두 신청했다. 가정의학과는 1차 진료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 이곳을 1차 진료기관으로 삼는 편법을 쓴 것이다. 윤씨는 접수를 맡은 간호사·간호조무사에게 의사지시라는 얘기를 하고 가정의학과에서 받은 소견서를 내과에 제출,보험진료를 받았다. 진료에 걸린 시간은 앞서 예로 든 김씨의 10분의 1 수준인 40여분에 불과했다.
조금이라고 빨리 성의있는 진료를 받으려면 하다못해 그 병원의 청소원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이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진료부조리는 입원하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시설이 좋다는 서울 강남의 J병원을 찾은 김모씨(32·상업)는 응급실에서 『절대안정이 필요하니 빨리 입원시키라』는 의사의 말에 입원수속을 하러 원무과에 갔었으나 담당직원은 입원대기 환자가 많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응급실에서 사흘을 기다리다 집으로 아버지를 모셔간 김씨는 수시로 원무과에 전화연락을 했으나 입원실이 없다는 말에 몇차례 병원을 찾아가 통사정한 끝에 수개월만에 간신히 입원실을 구할 수 있었다. 김씨는 후에 『유명 종합병원에 입원하려면 거마비가 필요하다』는 친구의 말에 원무과 직원에게 돈을 줬으면 훨씬 빨리 아버지를 입원시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태반이 안착되지 않아 임신 5개월만에 진통이 시작돼 서울 강남의 K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K모씨(35·여)는 『입원실에서 절대 안정하라』는 당직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나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사흘동안 비명소리가 가득한 분만실에서 지내야 했다.
K씨는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20여명이나 먼저 입원실로 가는 것을 보고 남편을 통해 원무과 직원에게 10만원권 수표 1장을 준 다음 분만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입원실에서는 20대 초반의 간호사들이 반말투로 거칠게 다루는게 고통스러워 수간호사에게 20만원을 주어 다소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특진을 신청한 의사가 회진때조차 묻는 말에 퉁명스럽게 몇마디 던지고 나가기 일쑤였다. 남편은 또다시 돈봉투를 들고 의사를 찾아가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중풍으로 쓰러진 친정어머니를 강남의 J병원에 입원시켰던 민모씨(41·여)는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 『의사선생님과 수간호사·담당간호사는 물론 어머니가 물리치료를 받으러가면 담당직원들이 함부로 다루는 것 같아 이 직원들에게도 사례를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살살 다루는 것 같았다』
췌장염으로 고통을 겪던 이모씨(43·여)도 병원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의 친지가 일러준 모병원의 원무과 직원에게 시킨대로 10만원권 수표 1장을 디밀고 입원실을 얻을 수 있었다.
병원부조리는 진료나 입원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퇴원할 때의 바가지 진료비도 힘없는 서민을 울리는 고질적인 병폐다.
91년에 1주일동안 서울 Y병원에 외과질환으로 입원했던 남모씨(60·여)는 퇴원때 치료비 청구액 1백43만원중 본인부담 액수가 1백10만원이나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원무과에 찾아가 진료비 내역을 물은 남씨는 불필요한 컴퓨터 단층촬영(CT) 등으로 진료비가 엄청나게 나온 것을 알았다. 이밖에 사용하지도 않은 상급병실료와 먹지도 않은 식사대 등이 들어가 있었다.
일단 돈을 지불하고 퇴원한 남씨는 수차례의 항의끝에 컴퓨터 단층촬영비의 일부 등 35만원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환자들은 다 조용한데 당신 혼자만 왜 트집을 잡고 난리냐』는 면박을 받아야만 했다.
의료기관과 환자간에 빚어지는 부조리외에 병원에서는 어느 제약회사의 약을 쓰느냐하는 문제로 각가지 비리와 부조리도 빚어진다. 우리나라 병원이 앓고 있는 병원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강진순기자>강진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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