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맞아 「유폐」 7년만에 독립기념관 옮겨/철저한 고증거쳐 1년간 제작/개성·단아미 물씬 한국화 걸작/조중현화백 그림 78년 공식 지정후 천안 추모각 봉안/86년 다른 작품 바뀐후 사장… 유족등 보존청원 결실최초의 국가공식 유관순열사 영정으로 당신의 추모각에 8년6개월동안이나 봉안됐던 영정이 「유폐」된지 6년만에 독립기념관(충남 천안군 목천면 남화리)으로 옮겨져 빛을 보게 됐다.
화제의 영정은 지난 77년 한국화가 심원 조중현화백(82년 작고)이 정부 당국과 유 열사 문중의 의뢰를 받아 1년간에 걸쳐 제작,78년 3월부터 충남 천안군 병천면 탑원리 유 열사 추모각에 보관됐던 것.
당시 이화여대 미대교수로 재직중이던 조 화백이 그린 이 영정은 문공부 심의를 거친 첫 공식 영정으로 가로 1m 세로 1m78㎝ 크기의 전신입상. 유열사의 본래모습과 개성,여인으로서의 단아함을 홀륭하게 표현한 인물화의 걸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5공시절인 지난 86년 당국이 고위층의 지시로 유 열사의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며 추모각도 증축,규모에 어울리게 큰 영정으로 바꾼다며 봉안돼있던 영정을 내리고 C화백이 그린 전신좌상 영정(가로 1m18㎝ 세로 2m)으로 교체했다.
그후 추모각을 찾은 참배객과 유열사 문중사람들은 새 영정이 18세던 유열사가 30대 중년여인처럼 묘사돼 있는데다 배경의 커튼이 지나치게 서양적이며 비스듬한 자세가 전통예법과 어긋나는 등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었다.
조 화백이 그린 구 영정은 그후 유열사 생가에 잠시 봉안됐다가 신·구 영정이 너무 다르다는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자취를 감췄다.
구 영정은 충남도 재산으로 등재된채 유 열사 생가 옛집 다락 깊숙이 「사장」 돼왔음이 조 화백 유족측에 의해 지난해 뒤늦게 확인됐다.
먼지에 쌓인 영정은 액자 군데군데 좀이 쏠아 더 방치됐더라면 원형마저 훼손될 정도였다.
유족들은 고심끝에 지난해 12월26일 문화재관리국에 영정의 온전한 보전을 바라는 청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추모각에 다시 봉안하는 것이 어렵다면 민족자존과 독립의 산교육장인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전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문화재관리국은 충남도에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해 보존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지난 1월5일 유폐됐던 유 열사 영정은 새롭게 자리를 잡게 됐다.
영정의 제작과정을 잘 아는 조 화백의 제자들과 유족들은 유 열사의 생전모습과 정신을 제대로 담기위해 작가가 문중·생가마을을 찾아다니며 증언을 청취하고 학계 등의 자문을 받아 정신이 맑은 새벽시간에만 작품에 전념하는 등 1년여에 걸쳐 심혈을 기울였다고 되새겼다.
3·1절을 앞두고 영정 보존상태를 점검한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은 이 영정을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좀벌레 등을 박멸하고 특수보존처리한뒤 되도록 빨리 독립기념관을 찾는 이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독립기념관 최창규관장은 『열사의 영정을 독립기념관으로 모셔오게 돼 다행이다』며 『격에 맞는 별도의 전시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유 열사 영정은 이달 하순 출간될 「심원 조중현 유고화집」에도 실린다.
제자들은 지난해부터 화집발간과 함께 유작전도 준비,오는 30일부터 4월4일까지 서울 프레스센터내 서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목천=최정복기자>목천=최정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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