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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척결은 정치자금 공개부터/문민정부에 고언 김수환추기경(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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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척결은 정치자금 공개부터/문민정부에 고언 김수환추기경(초대석)

입력
1993.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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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빌미 국민 채찍질 말도록/「호남의 한」 공감해야 화합이룩/인기 집착한 개혁금물… 전직 대통령 여론재판 되풀이 말자문민시대가 오기까지 김수환추기경은 한국 정치에서 멀리 떠나 있지 않았다. 20년 이상 군사독재가 계속되는 동안 가톨릭교회는 민주화운동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고,쫓기는 이들의 피난처였고,한맺힌 사람들이 울 수 있는 장소였다. 추기경은 고통받은 이들의 손을 잡고 긴 어둠속을 함께 걸었다. 32년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한 오늘 김수환추기경을 만나본다.

▼추기경께서는 역대 대통령의 통치를 지켜보면서 비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서 김영삼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좋은 대통령이 되는 길은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는 평범한 말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으나,성공한 대통령이 별로 없었던 것은 눈앞에 보이는 국민보다 추상적인 목표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든가 말로 국민을 채찍질하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 너무 영웅적인 이상에 불타서 국민을 몰고 가려는 것이 바로 독재의 시작입니다』

○정치자금법 개정을

▼김영삼대통령은 신한국 건설을 실현하기 위한 3대 당면과제로 부정부패 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의 확립을 제시했습니다. 이중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정부패 척결이야말로 신한국 건설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부패를 그대로 두고는 경제회생도 국가기강 확립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새정부는 고위직 관리의 재산공개와 감사원의 위상강화,부정방지위원회 설치 등으로 부패를 추방해나가겠다고 발표했는데,나는 그 모든 것에 앞서 정치자금을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부도덕한 정치자금이 부패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으며,정치자금의 공개없는 「윗물맑기운동」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위직에서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아 흥청망청 쓰는 바람에 하위직에서도 두려움없이 부정을 저질러왔고,유권자들까지 타락하게 됐고,결국 총체적인 부패구조가 사회전반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청와대가 민자당부터 정치자금의 수첩과 지출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하고,정치자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여 법을 지켜야 합니다. 전두환대통령이 백담사로 가기전 노태우대통령이 각계 인사들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도 정치자금 공개를 제안했었습니다. 그때 노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공개하면 온나라가 벌컥 뒤집힐 것입니다. 정치자금은 도저히 공개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개하면 온나라가 벌컥 뒤집힐 문제를 덮어두고,어떻게 개혁을 하고,부패를 척결하고,신한국을 건설하겠습니까』

▼김영삼대통령의 임기안에 북한이 붕괴하게 될지로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대비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통일이 되든 안되든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지역감정마저 해결하지 못하고,각자 이기주의에 빠져 나눔의 정신의 키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느날 북한체제가 붕괴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끌어 안기는 커녕 우리까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서 북한이 자신의 힘으로 어느정도 경제를 재건하도록 무조건 도와야 합니다. 특히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우리가 가진 것을 그들에게 나눠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중병을 앓고 있는 이인모노인이 세상을 떠나기전에 북으로 조건없이 돌려보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나는 그를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우리의 이산가족 상봉제안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인모노인을 돌려보내는 것은 북의 정치선전에 이용될 뿐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나는 무조건 우리가 먼저 인도주의를 실천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한 인간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잔인한 짓입니다』

▼국민당의 몰락으로 민자당은 더욱 커지고,김대중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를 잃은 민주당은 국민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에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민주당이 가장 먼저 할일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며칠전 당대표 경선에 나선 세분의 합동 정견발표를 TV에서 보았는데,너무도 구태의연한 투쟁조의 연설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당이 투쟁으로 강해지던 시절은 이제 흘러가야 합니다』

▼얼마전 전교조 문제의 해결을 건의하는 각계 원로들의 청원서에 서명하셨는데,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나는 전교조의 주장에 옳은 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그들을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병원이나 학교처럼 문닫아서는 안되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에는 분명히 반대합니다. 그러나 직업을 잃고 거리로 내쫓긴 사람들을 한없이 방치해서는 안되며,새정부는 그들과 하루 빨리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전교조도 좀더 융통성을 가지고 대화와 타협에 임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 청원서 서명한후 전국의 교장선생님들로부터 전교조 복직에 반대한다는 전화를 받았고,지방에서 일부러 상경한 분까지 있었는데,전교조도 이런 우려에 대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선때 DJ 지지

▼임기를 끝낸 노태우대통령이 청문회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통치기간에 일어난 일중에서 밝혀야 될 의혹이 있다면 마땅히 밝혀야겠지만,법의 테두리안에서 이성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6공 초기에 비해서는 한단계 성숙해져야 합니다. 전직 대통령에 관한 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인민재판식으로 진행된다면 이번에는 국민이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하셨습니까. 또 그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영삼대통령이 당선직후 찾아오셨을 때 나는 축하인사를 하면서 「그러나 나는 다른 후보를 찍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김대중씨를 찍었는데,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지역감정 문제가 크게 완화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곰곰 생각한 결과 나는 오랫동안 소외돼온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호남에서 90% 이상이 김대중씨를 지지했다고 해서 호남사람들의 지역감정이 더 지독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그런 비난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호남사람들의 감정이 왜 그처럼 지독하게 뭉쳤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난 1월2일 나는 김대중씨를 위로하려고 그의 집에 갔었는데,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남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김대중을 찍은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당한 푸대접이 하도 서럽고 억울해서 그들은 각자 자기 자신에게 투표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권리를 찾으려고 자기 자신을 찍었다가 끝내 패배한 사람들의 좌절감이 얼마나 처절하겠습니까. 정계를 떠나며 그 점이 가장 가슴 아픕니다」라고 그분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여러부문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으나,그 기막힌 말을 들으면서 내가 과연 호남사람들의 한과 분노를 얼마나 공감하고 있었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도층 솔선 중요

▼김영삼대통령도 호남 푸대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하겠습니까.

『조각인선 등에서 그런 노력이 보이는 것은 우선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역감정 문제는 대통령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온국민이 확고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키워가야만 해결될 것입니다. 공동체란 한몸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어느 한부분이 다른부분 때문에 억눌려 늘 아파하고 있다면,어떻게 그 몸이 온전하겠습니까. 결국 그 몸은 병들고 불구가 될 것입니다. 왼발과 오른발의 아픔이 다르지 않듯이 온국민이 호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해야 합니다. 단순히 이해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대통령도 호남의 한을 공감할 수 있어야 효과있는 지역감정 해소방안이 나올 것입니다. 호남출신 장관을 몇명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그의 한평생 동지였고 경쟁자였던 김대중씨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왜 그토록 고향사람들에 대해 가슴 아파했는지를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야 합니다』

▼김영삼대통령은 문민시대를 연 대통령으로서 「작지만 강력한 정부」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지도력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여당 후보로서 일찍이 유례가 없는 악조건이 겹치는 가운데서도 잘 싸워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이래 가장 공정했던 선거에서 승리했으며,정통성을 가진 강력한 정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이제 탄생했을 뿐 앞으로 5년을 두고 완성해가야 할 과제입니다. 문민시대란 단순한 반군 개념이 아니고,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피는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김 대통령은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국민에게 호소해왔는데,나는 이 말이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호소가 국민의 호응을 얻으려면 대통령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고통을 나누고,기득권을 버리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대담=장명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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