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일 144일」 훌훌 털고/강단 돌아가는 노재상/“학자길은 역시 책속에/후학들도 “뵐날 손꼽아”학자의 길은 결국 책속에 있었다. 일생에서 단 한번이자 가장 중요한 4개월여의 외도를 마친 노학자는 재상의 무거운 짐을 벗고 그리던 대학으로 돌아가게 됐다.
지난해 10월7일 우리나라 초유의 중립내각 총리를 맡아 문민정부 탄생의 산파역을 해낸 현승종 전 총리(74)는 3월2일 열리는 한림대 입학식에 참석하는 것을 시발로 다시 강단에 선다.
대학측은 현 전 총리가 입각전에 맡았던 한림과학원 운영위원직을 그대로 두고 대학원 강의도 병행하되 빠른 시일내에 공석중인 한림과학원장에 보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림대의 후학들은 본관 5층 2513호 현 전 총리의 연구실에 명예로운 퇴임과 대학복귀를 축하하는 화분을 들여놓고 연구실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며 다시 스승을 맞을 채비를 끝냈다. 교직 외길을 걸온 노학자가 노심초사끝에 총리직을 수락했을때 「혼탁한 정치판에 큰선비 한분을 잃지 않을까」 걱정했던 제자·후학들은 이제 한숨을 놓게됐다.
현 전 총리는 1백44일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28일 하오 춘천으로 돌아간다. 26일의 이·취임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관이나 정계는 물론 외부와의 연락을 일절 끊어버린 현 전 총리는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사도를 가다듬으며 모처럼 한가로움을 맛보았다.
총리비서실 직원들과 작별하는 자리에서 현 전 총리는 『앞으로 최소한 1년간은 신문이나 방송기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할만큼 고즈넉한 학자의 생활을 소망했다.
재임기간에도 몇차례 수행비서 1명만 데리고 1∼2시간 정도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책의 해」 선포식이 열렸던 지난달 19일에도 기념식 참석후 교보문고에 들러 매장을 둘러보며 신간서적 몇권을 샀다.
현 전 총리는 아침잠이 없는 개개의 노인들과 달리 비교적 늦잠을 잤다. 격무를 마치고 공관으로 퇴근한 뒤에도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 전 총리를 맞이할 한림대와 춘천 시민들의 감회는 각별하지만 『나를 위한 행사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본인의 뜻에 따라 마음속으로 노학자의 귀향을 축하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현 전 총리가 총장재직중 거주했고 앞으로도 살아갈 후평동 에리트아파트의 주민들은 27일 상오 현 총리의 무사귀향을 반기는 「현 총리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82년 한림대 개교때 대학발전위원장을 맡아 86년 2대 학장,89년 종합대 승격후 첫 총장으로 취임했던 현 전 총리에게 춘천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교직원·학생들은 90년 봄 교내시위가 한창일때 『데모를 하려거든 강의가 끝난 방과후에 하라』고 학생들을 엄하게 꾸짖어 흩어지게 했던 「대쪽총장」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노학자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통계학과 4년 권영중군(24)은 『선생님이 건강하신 모습으로 돌아와 전과 같은 배움의 자세를 열강하는 순간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김현수·김진각기자>김현수·김진각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