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이제는 개혁의 시간이다. 문민드라마의 서막을 보면서 느꼈던 일들을,몇사람이 모여 얘기했다. 다음은 그 녹음.『자네 「감의 정치」를 영어로 뭐라하는지 아나』
『뭔데?』
『일전 영어 잡지를 보니까,폴리틱스 오브 인스팅크트(poletics of instinct)라 했더군』
『인스팅크트,「본능의 정치」? 좀 깔본 번역같은데…』
『「감의 정치」가 그렇게 동물적·본태적인 것이고,「감」이 육감같은 것이라면 큰 일이지』
『그렇다면 폴리틱스 오브 인튜이션(intuition)은 어떤가』
『「직관의 정치」?』
『그것도 문제야. 직관이라면,판단이나 추리 따위 사유작용없이 대상을 직접 파악함인데,그것만으로야 어떤 사람의 40년정치 역정을 설명할 수 있겠나? 그의 자질이 직관뿐이라면,벌써 파탄이 났을테지』
『정치적 직관이 자산인 것만은 틀림이 없지. 순발력·돌파력·충력을 얻을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서 국가경영의 경륜이 나온다고는 못할 걸. 국가경영에는 고도의 구상력과 장기적인 기획력,수준높은 전문지식의 집중이 있어야 하는데,모두 직관과는 다른 개념아닌가』
『그럼 어떤가,폴리틱스 오브 토틀비전(total vision)은?』
『「감」을 「총체적 시각」으로 번역한단 말인데…』
『영어의 「비전」은 그냥 시각이 아니라,실제로 보이지 않는 대상을,정신적인 예민함,또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인지함이란 뜻도 있거든. 그런 뜻에서 「총체적 시각의 정치」』
『아무래도 희망적 관측,희망적 번역 같은데』
『아니야. 언제나 전체를 본다,숲을 본다,예리하게 보니까,숲속 나무도 보인다,여기서 나오는 판단이,남보기에 순간적인 것 같으니까,사람들은 그것을 「감」이라 한다』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니야?』
『그럼 달리 설명하지. 거 왜 조감도라는 것이 있지? 어떤 시설을 건설할 때,그 시설을 하늘의 새가 내려다 보듯 하면,그 시설의 전체 모습은 어떤 것이겠느냐 이것이 조감도 아닌가. 그처럼 정치를,나아가 나라를 조감한다면…』
『그러니까 「감의 정치」는 「느낌의 감의 정치」가 아니라,「볼 감,멀리볼 감,굽어볼 감의 정치」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긴 「감의 정치」란 말이 그럴 듯은 하구먼. 새처럼 굽어보니 이 나라가 한국병에 걸렸더라,그래서 「감의 통치」로써 그 병을 고치겠노라…』
『새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한 「위로부터의 개혁」에 그런 뜻도 들어 있는 것일까…』
『그건 알 수가 없지만,우리에게 지금 아쉬운 것이,「감」이 아닌 「감」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 장자 소요편의 대붕은 아니더라도,새가 날듯 높은 곳에서,멀리를 내다보는 시야가 아쉽거든』
『그럼 높이만 올라가면 세상이 다 보이나? 대통령 자리도 꽤 높은데…』
『자리 얘기가 아냐. 높이 오르면 보이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지. 삼각산에 오르면 인천 앞바다가 보인다. 정말 높이 오르면 역사가 보인다. 역사에도 여러가지가 있지? 바다에 파도가 있고,조류가 있고,해류가 있듯이. 그럼 우리는 지금 그 역사의 어느 물결을 타야 하느냐…』
『자네 누구에게 강의하나?』
『더 들어 보라구. 높이 오르면 세상이 보인다. 이 좁은 땅,공군 제트기를 타고 보면,동해와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워싱턴·모스크바·파리는 몰라도,평양쯤 못 굽어 볼 까닭은 없다. 그만한 높이는 확보해야 「감」이라 할 것인데…』
『그렇게 높이 올라 갈 것도 없지. 내가 새라면,효자동을 먼저 보겠네. 그럼 뭣이 보이겠나? 아마 몇겹의 고리,나를 둘러싼 포위망일거야. 맨 안쪽으로부터 막료·관료. 이 겹겹의 고리 바깥 저만치에 국민들이 있는데,그들이 열망하는 개혁을 어떻게 이루어 내느냐…』
『자네 이번 새정부 인사에 불만있나?』
『그게 아니라,높이서 보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초점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지. 생각해 보라구. 하늘 높은 곳의 수리가 그저 산하만 조감하고 있나? 아니지. 토끼 한마리가 꿈쩍하는 순간,일직선으로 내리 꽂혀서 먹이를 채가지. 그럼,지금 「감의 정치」 「감의 통치」 「감의 개혁」이 아쉽다고 할때,우리 앞의 「토끼 한마리」는 무엇일 것 같은가』
『내가 대신 대답하지. 그건 물가야. 마님들의 장바구니야. 새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한 3대 지표,부정부패 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 확립의 집약이 물가라는 거지. 부정·부패가 없고,경제가 되살아나고,기강이 선 나라에서 물가가 왜 날뛰겠나? 나 같으면 당장 「앞으로 1년,물가는 0%로 잡겠다」고 선언하겠어』
『실현 가능성은?』
『대통령이라면 그만한 의지와 힘이 있어야지』
『그런 모르겠으나,물가잡기는 비록 0%는 못되더라도 모든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이 틀림없어』
『아,이제야 생각났네. 「감의 정치」는 폴리틱스 오브 컨센서스(consensus)「공감의 정치」 「합의의 정치」야. 「감」은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때,국민들과의 합의에 이를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어떤 사람의 40년 정치역정은 이렇게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역시 희망적 번역 같은데…』
『정 그렇다면 차라리 당위적 번역이라 해두겠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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