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시절 반독재 투쟁의 선봉은 야당인 정치세력이었다. 그밖에 다른 각종 단체나 집단은 거의 「어용」 세력이나 다름없었다. 민의는 관제로 둔갑했고 민의 소리는 철저하게 억압당하고 말았다. 당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반독재 투쟁은 외로운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대학생과 민간의 합세로 4·19가 일어나 「독재자의 하야」라는 정치드라마를 연출했다. ◆5·16이후 반독재운동의 축은 야당과 더불어 민간인쪽으로 크게 옮겨졌다. 군사정권과 권위주의는 정치전반을 무력화시켰으나,그럴수록 민간세력의 저항은 오히려 끈질기고 거세졌다. 야당보다 재야의 도전이 한층 격렬했다고 본다. 6공에 들어 재야운동은 민주화와 더불어 한동안 급진으로 치달았다. 「전」자 돌림의 단체는 대개 과격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정치상황과 사회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재야는 서서히 방향을 바꾸는 협상을 드러내고 있다. 전대협의 해체라든가,전노련의 약화 등이 그런 실례다. 재야의 노선과 운동방식은 현실에 맞춰 가지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독재와 권위주의시대의 논리는 이제 민의정서와 다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민주화에 공헌한 재야의 노력은 평가하면서 새로운 방향모색이 요구되는 시기에 왔다. ◆6공 후반부터 자생적인 시민운동이 활발해졌음은 주목할만하다. 새로운 시민운동은 이념의 시대가 지났음을 확인해준다. 관심의 초점을 현실에 맞춘다. 제도의 모순,사회의 불의,공명선거의 수호 등으로 행동을 옮겨가고 있음이 뚜렷하다. 우리 사회가 한단계 한단계씩 성숙해진다는 증거로 받아들여 마땅할줄 안다. ◆10여개 시민운동단체가 가칭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약칭 정사협)를 만들어 부패추방운동에 돌입했다. 「부패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지적은 통쾌하다. 「부패를 뿌리뽑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호소는 사뭇 엄숙하다. 문민정부의 시동과 더불어 새로운 시민운동의 발걸음이 굳건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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