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상화” 본뜻 퇴색… 입식용 왜곡/예체능·교련성적 교사주관 절대적/등급·점수올리기 돈거래비리 초래/일부교육자 “학생 실력평가에 2중낭비” 비판도지난 81년 교육대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도입된 고교 내신제가 학교교육정상화라는 본래의 취지와 동떨어진채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어 평가방법 개선 등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행 내신제는 교육여건과 학생들의 자질이 서로 다른 서울과 지방,도시와 농촌 등을 한꺼번에 묶어 상대평가하고 있어 등급간 불균형을 심화시킬뿐 아니라 치맛바람 등 비리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94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반영비율이 30%에서 40%로 확대되면서 교과성적과 출석성적뿐 아니라 행동발달 및 특별활동 상황 등도 점수화된다.
이에따라 내신평가 방법과 점수산정에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으나 일선 학교에서는 방침조차 정하지 못한채 교육부의 눈치만을 보고있는 실정이다.
고교교육현장에서는 내신등급을 놓고 매일 살벌한 싸움이 벌어져 「더불어 사는 삶」은 찾아볼 수 없고 「불공정한 게임」만이 속출하고 있다.
현직교장이 입시브로커와 짜고 내신성적을 위조해준 최근의 사건만 보더라도 교육내용을 평가하는 최선의 잣대라는 내신이 얼마나 많은 부정의 소지를 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교사가 특정학생에게 시험문제를 가르쳐주는가 하면 일부학생들은 내신성적을 한점이라도 더 받기위해 교사의 책상서랍을 뒤져 시험지를 꺼내가기도 한다.
내신을 둘러싼 각종 비리는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계 과목과 교련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과목은 대개 필기시험 40%,실기시험 60% 이상으로 성적을 평가,교사의 주관이 많이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국어 영어 수학과목의 성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들 예체능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내신총점이 껑충 뛰기 때문에 일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드세지기 마련이다.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아들을 둔 서울 구로구의 이모씨(59·여)는 아들이 3학년이던 지난해 기막힌 일을 당했다.
반장 어머니로부터 일방적으로 육성회원이 되었다고 통고받은 이씨는 매달 4만원을 내고 가끔 담임선생과 만나 회식을 했다.
이자리에서 반장 어머니는 15명의 육성회원이 낸 돈으로 50만원을 만들어 담임에게 전하고 나머지는 회식비용으로 썼다.
이씨는 아들이 전과목에 걸쳐 공부를 잘해 내신성적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몇달후 체육실기시험을 치른후 묘한 일이 벌어졌다.
체육성적이 항상 나쁘던 한 학생이 1등을 한 것이다.
학생들은 모두 이씨 아들의 실기가 더 나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소문해보니 그 학생의 어머니가 체육선생을 찾아가 봉투를 건넸다는 것이었다.
최근 고교 체육교사를 지망하는 예비교사들 사이에서는 『서울 강남의 S고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 학교는 체육실기시험을 보면서 교사가 학생을 한명씩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불러내 실기를 시킨다는 것이다.
강남지역의 한 학부모는 『예체능계과목의 경우 20만원정도면 간단하게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며 『일부 교사들은 성적단계 별로 가격을 정해놓고 있기까지 하다』고 귀띔한다.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은 예체능계 과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과목의 경우 대부분의 학교에서 컴퓨터로 성적을 처리하기 때문에 사후에 성적을 조작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일부 고교에선 시험을 치르기전 국·영·수 등 중요과목의 경우 담당교사의 과외를 받거나 시험문제지를 사는 수법이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방의 모대학에 재학중인 박모양은 고2때부터 영어·수학 담당교사로부터 과외를 받았다. 담당교사에게 과외를 받으면 대입뿐만 아니라 내신성적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 때문이었다.
과외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30등 안팎이던 학급석차가 20등안으로 껑충 뛰었다. 시험을 앞두고 괴외선생이 총정리를 해주곤했는데 시험을 출제한 뒤에 하는 것이라 사실상 시험문제를 가르쳐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교사과외의 경우 담당과목 선생과 학생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교장,교감도 있지만 담임선생의 역할이 크다. 담임에게도 상당한 사례금이 주어진다고 한다. 강남 모사립고의 L모교사(32)는 지난해 여름방학직전 한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방학동안 취약과목을 지도해줄 담당교사를 소개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고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그 학부모는 자기 아들의 취약과목을 지적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없이 『얼마면 시험지를 살 수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가 거절하자 담당교사에게 중간다리를 놓아달라고 매달리기까지 했다는 것.
강북지역의 한 교사(27)는 『강남 8학군지역에서 담임을 하면 1년에 1천만원은 충분히 벌 수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강남지역의 학교로 옮기려는 교사들이 많다』며 『업무부담이 많은데도 담임자리가 이권을 가진 자리로 인식돼 나이 많은 교사들까지도 담임을 맡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내신을 둘러싼 부정이 이처럼 끊이지 않기 때문에 고교 내신평가의 공정성은 여전히 불신을 받고 있다. 전교조가 94학년도부터 개편되는 새 대입시제도에 관해 지난 91년 올해 고3이 되는 1학년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내신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히 높았다.
조사결과 학생들이 내신평가의 신뢰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전적으로 선생님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경우는 불과 20.9%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신뢰는 하지만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와 「신뢰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각각 29.6%와 20.5%로 나타났다. 학부모의 경우 불신의 정도가 학생들보다 약간 낮기는 했지만 대동소이한 결과였다. 교사와 학생,학부모간에 불신의 골이 의외로 깊게 패어 있는 것이다.
내신비리가 횡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행 제도가 학교생활을 평가하기보다는 학과성적에만 치중,입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대 문용린교수(교육학)는 『현행 내신제도는 무의미한 2중의 낭비일뿐이다. 학력고사 점수로 이미 학과점수를 평가해 놓고 내신으로 학과 점수를 다시 평가하는 것은 우리 교육,입시제도의 불합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내신은 학과점수가 아닌 학교생활 기록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새 입시제도의 내신평가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새 제도하에서 내신은 학업성적 80%,출석점수 10%에다 행동발달상황,특별활동,교내외봉사활동 등 학교생활 성적을 10% 넣게 돼있다. 그런데 학교생활성적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여서 평가의 기능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합격자를 늘리려 만점을 줄게 뻔하고 양심적으로 평가하는 학교는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등급을 세분화하고 반영비율을 높여도 고교내신을 보는 대학의 시각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서울대 백충현 교무처장은 『내신성적을 40% 반영한다고 하지만 기본점수가 있기 때문에 1등급과 15등급간에는 성적차이가 10%밖에 나지않는다』며 『더구나 실력있는 1등급간의 차별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학으로서는 본고사에 비중을 두어 학생을 선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 처장은 『내신성적이 하나의 시험으로 변별력을 가지려면 외국처럼 전국 고교의 랭킹에 따라 차등점수화하는 것이 바람직 하나 우리나라 교육현실상 엄두도 못낼 일』이라고 덧붙였다.
◎내신제 내년부터 이렇게 달라진다/교과성적 비중 90%서 80%로 낮춰/행동발달·특별활동도 10% 점수화/1등급은 5등서 3등으로 범위 줄여
94학년도부터 시행되는 새 내신제도의 특징은 크게 대입시 반영비율의 상향조정,교과성적 등급의 세분화,행동발달 등 학교생활 성적의 반영 등 3가지이다.
우선 내신성적의 의무반영비율이 종전의 30%에서 40% 이상으로 늘어난다. 또 기본점수를 고려한 실질반영률도 4.9%에서 10.2%로 높아져 대입시 총점에서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커지게 된다.
새 제도하에서 내신성적은 교과성적 80%,학교생활성적 20%(출석성적 10%,행동발달·특별활동 상황 및 교내외봉사활동 10%)로 구성된다. 종전에 비해 교과성적의 비중이 10% 줄어들고 대신 행동발달 등의 성적이 새로 추가됐다.
교과성적의 경우 15개 등급으로 세분화되고 등급간 기준 점수차도 2점에서 2.5점으로 벌어진다. 따라서 상·하위 등급간의 점수차이가 종전보다 커지게 됐다.
입시총점이 대개 4백85.7점(학력고사 3백40점+내신 1백45.7점)이던 종전에는 교과내신의 최고점과 최하점이 각각 1백31.1점과 1백13.1점으로 1등급과 10등급의 점수차이가 18점밖에 나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입시총점을 종전과 비슷한 5백점으로 가정할 경우 최고점과 최하점이 1백60점과 1백25점으로 1등급과 15등급의 점수차이는 35점이나 나게 된다.
또 등급의 범위도 자연히 좁아져 한 등급에 포함되는 학생수가 줄어든다. 종전에는 출신고교 전체 석차의 상·하위 5%가 각각 1등급과 10등급이었으나 새 제도에서는 상·하위 3%가 각각 1등급과 15등급이 된다. 가령 전교생이 1백명일 경우 종전에는 5등까지가 모두 1등급이었으나 앞으로는 3등까지만 1등급이고 4,5등은 2등급이 된다.
학교생활 성적중 출석성적은 5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단계별로 총점에서 10%씩 차이가 나며 3년동안 결석일수가 2일 이하일 경우 1등급으로 만점을 받고 31일 이상일 경우 5등급으로 만점의 60%를 득점하게 된다.
행동발달 등의 성적은 절대 평가제를 도입했는데 5개 등급으로 나뉘어 등급 단계별로 총점에서 10%씩 차이가 난다.
행동발달과 특별활동성적은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것을 각각 가·나·다로 평가해 학년별로 「가」는 3점,「나」는 2점,「다」는 1점을 부여한다.
교내외 봉사활동은 학생회 간부나 학급반장 등을 맡거나 환경정화운동,재해복구 등의 봉사활동으로 표창을 받은 경우 1년에 1점씩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성적을 낸다. 이 항목에 해당되는지의 여부는 학교사정위원회 또는 성적관리위원회가 심의,결정한다.
행동발달,특별활동,봉사활동 성적을 모두 더해 종합점수를 내고 이에따라 등급을 결정한다.
이와는 별도로 일반고교,실업고교의 경우 교과성적 가운데 예·체능계 및 교련과목의 실기평가에 기본점수제가 도입돼 무단결석없이 성실하게 수업을 받은 학생에게는 총점의 70% 이상이 주어지게 된다.□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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