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촌지·접대비 “관례”/참고서 채택료 싸고 뒷돈거래도사회가 아무리 혼탁해도 교육현장만은 깨끗하기를 우리 모두는 기대한다. 그러나 팽배한 배금주의와 학력만능주의 병폐가 교육현장을 오염시키고 있다.
선생님들에 대한 촌지는 이젠 관례로 굳어졌다. 지역과 계층,학년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국민학생 학부모의 경우 최소한 3만∼5만원,중고생 학부모는 5만∼10만원은 건네야 체면이 선다. 교사들은 국민학교 저학년,중3,고3 등 촌지가 집중되는 이른바 「금잔디」 학년의 담임을 맡기 위해 애를 쓴다.
대기업 간부인 L씨(45)는 최근 고1 아들의 담임으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L씨는 직장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대다수가 『점심식사는 조촐하게 사고 대신 촌지를 두툼하게 건네줘라』고 귀띔했다. L씨는 그러나 아들의 선생님에게 돈봉투를 건네는게 아무래도 실례인 것 같아 촌지를 줄돈으로 저녁식사를 후하게 대접하기로 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들의 담임은 비슷한 또래의 동료교사 한명과 함께 나왔다. 이날 L씨는 일식집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룸살롱에서 술을 사느라 1백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출했다.
강남 8학군에 살지만 생활은 풍족하지 못한 주부 P씨(46)는 지난해 학기초 여고 2년생인 딸이 부반장이 된뒤 담임의 청에 따라 1년분 기름걸레 값으로 20만원을 냈다. 딸의 담임은 이후 일요일이나 방학중 종종 P씨에게 『오늘 당직이라 학교에 나와 있는데 함께 있는 교감과 주임선생님들 점심식사가 걱정』이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마다 P씨는 부랴부랴 점심값을 준비해 학교에 달려가느라 곤욕을 치렀다.
학부모 촌지는 그러나 교육비리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학교에서도 일반 사회 못지 않은 뒷돈거래가 성행한다. 부교재나 모의고사 문제지 채택료는 교육계의 대표적인 검은 돈이다.
우리나라 전체 출판물의 60∼70%를 차지하는 학습 참고서 시장규모는 줄잡아 연간 8천억∼1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1천억원 이상이 일선학교에 채택료로 건네진다는 것이 출판업계의 주장이다.
전국서적상 조합연합회는 지난 91년 서울시 교육청 『대부분의 중고교가 특정 출판사 참고서를 교재로 채택하는 대가로 해당 참고서 정가의 「20∼30%×학생수」의 뒷돈을 받아 25∼30%를 주임교사나 교감에게 상납하고 나머지는 동료교사와 나누거나 회식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서울 강남 J고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N교사(42)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어차피 책값은 정해져 있고 채택료를 받지 않을 경우 업자가 채택료에 해당하는 돈을 챙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별다른 죄책감없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3개 사설 입시기관이 독점하는 대입 모의고사 시장규모는 2백억원대에 이르며 이중 20% 가량되는 30억∼40억원이 사례비나 장학금 명목으로 학교측에 건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의고사 문제지 채택을 둘러싼 뒷돈거래는 대개 교장이나 교감선에서 이루어지지만 교사들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진다. 서울 S고의 K교사(30)는 『모의고사 전후에 회식비나 시험감독비조로 돈이 나올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교사들이 찜찜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거나 몇몇 교사들은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의 응시료를 대신 내준다』고 말했다.
졸업 사진촬영이나 앨범구입을 둘러싸고 업자로부터 학교가 뒷돈을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일부 학교는 수학여행도 업자들과 흥정해 구전을 챙기고 있다. 여행업계에 의하면 경주로 3박4일 수학여행을 갈 경우 1인당 평균 6만∼6만5천원선,10개반인 한 학년의 총 수학여행경비는 보통 3천만∼3천5백만원에 이른다.
서울 종로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학교에 10%를 떼어주는데다 영업과정에서 드는 접대비를 계산하면 보통 15% 이상이 학교에 돌아간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여행업자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숙박업소의 수준과 음식의 질을 낮추게 돼 피해는 돈을 낸 학생들이 보게 마련이다.
86년 2학기부터 중고교의 교복착용이 허용되면서부터 2천5백억원대에 이르는 교복시장을 둘러싼 비리도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90년에 일어난 H여상 J교장의 뇌물수수 사건.
J교장은 1천여만원의 뇌물을 받고 특정업체를 일방적으로 지정,1천여명의 학생에게 교복을 맞추게 했다.
그런데 교복의 값이 비싼데 비해 질이 형편없자 「J교장이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황한 J교장은 학생대표들을 불러 『나는 절대 업자로부터 1천만원을 받은 일이 없다』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뇌물액수를 실토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J교장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자 스스로 사표를 냈다.
교육계의 비리는 들추자면 끝이 없다. 『교사가 되기 위해선 재단 이사장에게 1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두꺼비」를 바치고 승진을 하려면 적어도 「장(교장)천,감(교감)오」를 상납해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 최근의 입시부정사건은 이같은 교육계의 추악한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계 비리가 우리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데 공감하면서도 학교를 마치 「우범지대」처럼 매도하는 최근의 사회분위기에 우려를 표시한다. 교육계 비리는 결국 「돈이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된 배금주의와 「내 자식 대학보내기 위해서라면 범죄라도 불사하겠다」는 학부모들의 학력만능주의가 만든 구조적 부패라는 지적이다. 교육계의 비리와 부패를 뿌리뽑는 일은 사회와 학부모,학교 등 세주체가 대개혁의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교육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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