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씻는 「물대통령」 역할 만족/친지방문·동네 목욕탕도 갈 것우리는 민주주의의 나라로 거듭 태어나 두번째의 평화적인 정부교체를 맞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데는 적지않은 진통이 있었고 값비싼 대가도 치렀습니다.
우리의 민주화는 자율과 참여로 그것을 이루어낸 국민여러분의 작품입니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너그럽게 해주었으며,서로 화합하고 용서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지난 40여년간 우리에게 열려있던 것보다 더 넓은 세계가 새로이 열렸습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 열리면서 북한도 태도를 바꾸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했고,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에 서명했습니다.
통일을 가로막던 외적장애가 모두 제거되어 이제 민족의 재통합은 우리 스스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경제는 민주화 과정에서 큰 대가와 희생을 치렀습니다. 과격한 노사분규를 겪고,짧은기간에 임금이 급속히 오른데다 인력부족까지 겹쳐 우리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선진국의 보호주의,기술장벽,그리고 후발국의 맹렬한 추격속에서 수출산업이 받은 타격은 더욱 컸습니다. 이런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구조의 조정을 서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반이 약한 중소기업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나라가 다 함께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속에서 우리가 이룬 높은 경제성장은 그 자체가 값진 것이지만,민주화와 함께 성취한 것이어서 더욱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훼손된 민족자존을 피와 땀으로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땅에서 민주공화국을 세운 이후 우리의 현대사가 단절을 거듭해온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이룬 영광과 보람은 모두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야 하고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발전의 초석으로 남을 것입니다. 제가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기대에 얼마나 충실히 헌신했는지 역사가 판정해 줄 것이며,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일문일답◁
국정 최고책임자로서가 아닌 개인 자연인으로서 청와대를 떠나는 심정을 밝혀주십시오.
『이제는 정말 자유스럽게 쉴 수 있구나 하는 기쁜 마음이 듭니다. 청와대 생활을 낮이고 밤이고 참으로 말이 많아 자유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규격도 많아 포로생활이라고나 할까요.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많은 친지들도 만나보고 동네 목욕탕에도 가고 싶은 생각입니다』
스스로 임기 5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통령이 대통령을 평가한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지요. 앞으로 역사가 평가를 할 것이고 그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다만 이 시대가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겼느냐를 생각해볼때 모든 갈등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씻어내는 청소기의 역할을 맡긴 것 같습니다. 물대통령 소리를 들었지만 불대통령이라고 안불렸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물대통령이었기에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었지 않습니까. 이러한 어려운 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했고 국제적 지위를 드높여 민족의 자존심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년간 경제에 대한 평가가 모든 관점에 따라 엇갈리고 있고 민주화의 대가라고 하지만 부정적 견해도 많은 것 같은데요.
『언론에서도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평가하더군요. 국민총생산(GNP)이 두배로 늘어 세계 19위에서 15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호주 네덜란드와 맞먹는 수준입니다. 무역규모도 세계 13위안에 듭니다. 그러나 불안한 경우도 없잖아 있습니다. 우선 비판적인 시각에서 첫째로 꼽는 것이 산업의 경쟁력 약화입니다. 그 원인은 임금이 급격히 올랐고 대신 생산성은 떨어져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극심한 노사분규와 인력난으로 제품의 질도 낮아졌습니다. 이제 최근 2∼3년간 정치가 안정되고 사회도 따라서 안정되면서 정부시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퇴임후에도 봉사의 의무가 많이 남아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항간에는 IOC 위원 얘기도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계획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제 대통령직분이 갖는 역할과 권리는 가고 의무만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봉사할 일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과 새 정부에 당부나 요청할 말씀은.
『첫째는 명실공히 선진국에 뛰어오르는 일과 또하나 7천만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꼭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새 대통령취임후 일정기간은 질책이나 비판보다 격려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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