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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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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3.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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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청와대의 비서진이 선을 보이더니 금주들자 총리와 감사원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때가 때인지라 신문들도 연일 인사얘기로 쉴날이 없다. 정권교체라는 것이 이런 인사교체만은 아닐텐데 어쩔 수 없이 그것은 대인사이동으로 시작되고 있다.새 진용을 갖추는데 줄잡아 2백여명의 자리는 새로 채워지리라 한다. 어느 직급에서 어떻게 끊었는지는 몰라도 대강은 그럴듯해 보이는 숫자다. 정권교체시 3천에서 3천5백의 자리가 바뀐다는 미국에 비하면 훨씬 「평화적」이다.

○퇴임후 풍토 유감

새 진용이 들어선다는 것은 묵은 사람이 떠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며칠전 본보 조간에 의하면 6공의 장관은 모두 1백6명(평균 재임기간 1년8일). 1년에 한 부처가 한사람씩의 장관을 바꾼 셈이다. 퇴임장관들의 행선지들도 다양해 강단복귀·해외연구·회고록 집필·정계입문이 있는가 하면 「사무실 개설」이란 아리송한 것도 있다. 로비스트가 되거나 변호사·정계복귀·기업 혹은 학교로 돌아가는 미국의 경우나 크게 다를바 없다. 굳이 다른 것을 찾자면 그들이 각료생활을 하기 전과 후가 비교적 거리낌이나 제약없이 연결되는데 비해 우리는 그 전후에 커다란 차단이 있고 원활한 소통도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장관을 지내고 나오면 별격의 대접을 하려하고 본인 스스로도 약간은 그런 성향을 보인다. 툭툭 털고 본령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민주화와 문민의 새 시대라는 때에 결코 바람직한 풍토는 아니다. 불식되어야 할 구습이기도 하다.

흔히들 권력을 위해 일하는 것을 「마지막 봉사」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이가 지긋해서야 발탁된다는 타이밍도 있겠고 맡은 일이 평생하던 어떤 것에도 비할바가 아닌 중대함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이란 점이 때로 무리를 낳는 계기가 만들어 주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리나 억지,전횡이란 다음에 대한 배려가 무시될 때 성할 수 있고 부패라는 것도 크게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랜기간 우리의 권력이란 상당부분 정통성이나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를 낳는 경우가 허다했다. 평생을 강단에서,법정에서 혹은 기업에서 성실하게 일해오다 입각한 어느 순간부터 표변하듯 온갖 무리와 억지를 소신과 추진력으로 오해한듯 밀고 나가는 강성인사를 볼 때마다 그것이 반드시 개인적인 「소질」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타깝기 그지 없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권력자에게 대한 충성으로 간주되길 바랄지는 모르지만 「전직」을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재수용 자세에는 엄청난 해독을 끼쳤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유능했던 대학교수가 비할바 없는 능력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친정인 강단으로 돌아가려해도 학교나 학생들에게 모두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그것인 그 교수,그 학교,그 학생들의 손실이기전에 우리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장관을 지낸 사람인데…」하며 모양새 사납지 않은 곳에 사무실이나 연구소를 차려놓고 가끔 신문의 동정란에나 이름과 사진을 내는 것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며 혹 재기용의 찬스를 노려 「대기」 상태에 들어간다면 이것 또한 결코 생산적인 일은 못된다. A대학이 안되면 B대학으로,B대학이 안되면 C대학으로 돌아간다는 자세가 장본인에게서 먼저 나와야 하고 우리 사회 스스로도 「권력의 때가 묻었으니까…」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재수용의 폭을 훨씬 늘려야 한다.

○재탕인사 말아야

새 정부의 인사는 각료인선이라는 핵심적인 대목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진 인사의 원칙은 아무래도 개혁과 참신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재탕은 어느정도 배제되리라고 본다. 새 사람을 기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리스크는 있어도 또다시 「뻔하게 돌아간다」는 권태는 불식시켜 줄 수 있다. 미국 유권자들이 「시험되지 않은」 클린턴을 선택했던 심리가 우리 국민에게도 분명 있다면 새팀의 면모가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구닥다리의 재탕으로 실망을 줘서는 안된다.

만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료들에게도 단임의 정신이 적용됨이 바람직하다. 단임이되 뚜렷한 하자가 없는한 대통령의 임기내내 가는 장수형도 나와야 한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퇴임후에도 끝도 없이 권부만을 쳐다보며 재기용을 기다리고 있는 무수한 전직 그룹들을 하루 속히 본령으로 돌아가게 하는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관직이란 한번 봉사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란 새로운 전통이 세워지기만 한다면 재직시의 무리나 횡포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느냐,안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양식과 처신에 있는 것이지 권력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떠나는 사람,새로 들어갈 사람,모두가 시대의 의미를 새롭게 가다듬는 자세가 정말 필요할 때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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