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어 그림자가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다. 환락과 부패와 부정으로 혼탁한 우리 주변에서 한줄기 광명처럼 눈부신 모습을 본다. 모교의 강단에 번듯하게 선 맹인교수,그의 인간승리가 숙연하다.시련은 어려서 시작되었다. 장애자로 태어난게 아니고 정상으로 살다가 시력을 잃었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았다. 암흑의 공포,역경,절망을 이겨냈고 끝내 자기를 이겨냈다. 모진 시련이 어디 한두번이었겠는가. 대학의 문을 두드릴 때 몇몇 학교에선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학을 꺼렸다. 연세대에 들어감으로써 의지가 살아났다. 젊음을 오로지 면학에 불태웠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미국으로 유학해 석박사과정을 깨끗이 마쳤다. 상상을 뛰어넘는 각고의 결실이다.
오렌지족이네 입시부정이네 해서 탁류천지가 되어버린 듯한 마당에 맹인교수의 등장은 빛과 그림자의 대조처럼 선명하다. 이래서 세상은 어둡지만은 않다고 한다. 썩고 더러운 가운데서도 빛의 생명은 더욱 반듯하고 더욱 굳건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맹인교수의 인간승리는 진한 감동과 교훈을 함께 안겨준다. 정상인에게는 삶의 뜻과 가치가 무엇이며 어떻든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닫게한다. 또한 모든 장애인에겐 축복과 격려를 남겨준 경사이기도 하다. 역경을 박차고 이겨낸 장애인의 개가는 이처럼 울림이 크고 넓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스스로 자기를 개척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한다.
그의 「실존의 용기」가 자랑스럽다. 암흑의 고통을 극복하기란 초인적인 용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온 세상이 갑자기 캄캄해졌으나 그가 믿고 의지한 지팡이는 인간의지 하나였을 뿐이다. 하면된다,고난은 물리칠 수 있다는 인간드라마를 직접 연출한 용기가 그래서 더욱 장하기만 하다.
아울러 우리는 그를 뒷받침한 인간애의 헌신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극한 모정,강인한 아내의 내조가 숨은 공로임을 터득케 된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고 누구도 외롭지 않은 인생역정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교훈과 공감을 두고 두고 새겨볼만 하다.
오늘같은 음음한 세상에서 강렬한 빛을 만난다는 것으로도 유쾌하고 마음이 든든하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은 어둠의 자식들이 아닌 빛의 생명이다. 빛은 희망의 상징이며 발전과 전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세태와 앞날을 어둡게 보지 않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맹인교수의 인간만세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기를 빌고 싶다. 빛을 보고 걷자. 세상은 얼마든지 밝아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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