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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부정/부패와의 전쟁 제2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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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부정/부패와의 전쟁 제2부:22

입력
199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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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상 심층추적/관내업소와 공생관계… 정기 상납받아/사건수사 「봉투」따라 “변질”경찰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공무원이다. 경찰 스스로 「국민과 항상 3분내 거리에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로 인정하기를 주저한다. 민중의 「갈고랑이」 「몽둥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구멍가게라도 하려면 파출소에 정기적으로 인사를 해야하고 고소사건은 봉투가 곁들여져야 매끄럽게 돌아간다. 서민들은 사건수사도 돈대로라고 푸념한다. 게다가 운전자치고 한번쯤 교통경찰관에게 돈을 쥐어 주지 않은 사람도 드물다. 구멍가게 간판이라도 내걸면 관내 파출소에 명절 떡값,생일 떡값 등 정기 상납이 관례화된 가운데 지역유지들중에는 아예 방범위원 청소년선도위원 등 직함을 얻어 경찰과 「공식거래」를 하는 경우도 허다한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혔던 박모씨(51·서울 양천구 목동)는 담당 교통경찰관에게 1백만원을 주고 사고를 조작,구속을 면했다. 사고가 나자 교통경찰관이 먼저 나서 피해자 가족들과 박씨를 불러 합의를 종용했고 사고보고서는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한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으로 조작했다. 박씨는 교통경찰관 덕분에 구속을 면할 수 있었지만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했다.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56)는 지난해 12월 송년회를 마치고 승용차를 몰고 귀가하다 음주단속에 걸렸었다. 그러나 담당 교통경찰관은 즉시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고 운전면허증만 압수한뒤 이튿날 경찰서로 출두하라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김씨는 이튿날 경찰서 인근 다방에서 담당 경찰관을 만나 준비해간 30만원을 건네줬다가 창피만 당했다. 담당 경찰관은 『직원들 저녁회식비도 안된다』고 투정을 부리며 봉투를 돌려줬다.

30대 초반의 경찰관이 1백만원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요즘 시세를 너무 모른다』고 핀잔을 줄땐 부아가 치밀었지만 음주운전으로 발목이 잡힌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로변 건축공사장도 경찰의 좋은 「먹이감」이다.

건축공사를 벌이다보면 인도를 침범하기 일쑤고,레미콘트럭 중장비 등이 드나들기 마련이어서 교통방해 등 위반사항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일선 교통경찰관은 『관내 순찰도중 건축현장 부근에 순찰차를 세워 놓기만해도 현장소장이 으레 달려나와 돈봉투를 쥐어준다』며 『대형건물 건축공사장이 많은 지역에선 봉투 액수가 수백만원대에 이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봐주기」식 수사로 돈을 챙기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5월 봉제공장을 운영하다 3천만원을 부도낸 이모씨(47)는 은행이 경찰에 고발한 바로 다음날 부인을 통해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조용히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 경장이라는 경찰관은 이씨에게 『계속 소재 수사중이라고 보고할테니 어떻게든 부도를 막은뒤 연락하라』고 말했다.

이씨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부도액을 2주일만에 메워 구속을 면하고 이 경장에게 사례비로 2백만원을 건네줬다.

일선 경찰관이 이같은 비리로 모은 돈이 대개 「상납」되기 마련이다. 「공범」의 굴레를 함께 써야 그만큼 안심이 되고 말썽소지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서울 N경찰서 강력1반 소속 최모경장(42)은 일선 파출소로 좌천된데 반발,사표를 내면서 『지난해 6월 대마초를 재배했다가 입건된 이모씨(55·여)의 대마초 재배량을 줄여 불구속 입건되도록 도와주고 받은 1백만원중 20만월을 형사계장에게 상납하는 등 올해 1월까지 3차례에 50만원을 상납했따』고 폭로했다.

일선 경찰서 교통·형사·수사과 등 이른바 노른자위 부서 간부들은 「상납」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해 부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 일선 경찰서 교통계장은 『부임후 한차례도 상납하다 않았더니 「혼자 먹는다」는 등 온갖 음해성 소문이 나돌아 경찰에 투신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일밤 서울경찰청 여자 형사기동대가 속칭 청량리 588 사창가에 대한 기습단속을 벌였을 때 상당수 업소가 이미 문을 닫아 사실상 허탕을 쳤다. 이들 업주를 돌봐주는 일부 경찰관들이 「단속정보」를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간을 어겨 경찰서에 연행된 유흥업소 업주들은 대부분 영세업소 주인들로 『평소 상납하지 않은 괘씸죄 때문』이라고 강변하기 일쑤다.

승진·전보 인사 때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뇌물이 오간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로 경찰의 부패구조는 심각하다.

경찰은 자체 감찰활동을 강화,경찰관 비리를 막아보려 하고 있지만 일시적 효과뿐 부패의 발본색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일반 공무원의 배가 넘는 과중한 업무량 등 열악한 근무조건과 낮은 봉급체계가 부패의 근본적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근무조건이 나아지고 봉급이 오른다고 경찰의 부패와 비리가 사라지리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각종 법적·행정적 규제가 많은 현실에서는 「검은손」은 언제나 경찰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황우교수(51)는 『경찰비리는 사회의 병리와 정비례한다』며 『보수체계 개선과 자질있는 경찰관 확보 및 감독 강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위법행위를 하면 어떤 형태로든 처벌을 받는다」는 전국민적 의식개혁만이 경찰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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