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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무총리론/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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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무총리론/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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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사람이 국무총리 자리에 뜻을 두고 있는 모양인데 무식한 사람들이야. 국무총리는 한직이야. 미국에서는 국무장관이라고 하지만 실은 대통령의 수석비서지. 심지가 깊은 애국자라면 장관,그것도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재무장관 자리를 자청해야 할 것이오…』1948년 7월 이승만대통령 당선자가 이화장에서 첫 조각을 할때 한민당의 영수인 인촌 김성수에게 한 말이다. 이 박사는 비록 한민당의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됐지만 그들의 요구대로 인촌을 총리로 임명했을 경우 막강한 한민당 세력에 의해 자신은 허수아비가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총리직의 무게를 깍아내리면서 인촌에게 재무장관을 맡아줄 것을 종용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초기 첫 국무총리를 고르는데 저마다 크게 고심했다. 당시의 국가적 상황에 필요한 적재를 발탁하고 또 자신의 탁월한 인사솜씨를 국민에게 과시하려 했었다. 하지만 첫 총리의 기용은 한결같이 실패작으로 끝났다. 이유는 분명했다. 총리의 능력과 역량보다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고 특히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박사는 인촌에게 총리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북한 동포들을 고려,이윤영목사를 내세웠다가 국회서 인준이 부결되자 청산리 전투에서 전과를 올린 무인출신의 이범석을 기용했다. 당시 총리는 총리령도 발할 수 있고 또 민주적인 의결기구인 국무회의 부의장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었으나 이 박사의 카리스마적인 국정운영으로 별로 할일 없이 지내다 1년8개월만에 물러났다.

63년 12월 박정희대통령은 쿠데타·군정의 이미지를 씻기위해 교육·언론·실업계의 덕망있는 원로인 최두선을 삼고초려 끝에 총리로 임명,소위 방탄내각을 출범시켰으나 국정내용의 공개와,민주행정 등 꼿꼿한 원칙을 내세우는 최두선이 껄끄러워 5개월만에 교체했다. 80년 9월 최규하대통령을 밀어내고 집권한 전두환대통령은 암울한 국가적 상황속에 침체된 경제의 회생을 위해 남덕우를 기용했으나 빠른 시일안에 성과가 나오지 않자 1년3개월만에 바꿨고 88년 2월 노태우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청산과 민주화,보통사람시대의 만개 및 경기회복 등 여러마리의 토끼를 잡기위해 학자출신의 이현재를 발탁했지만 분출하는 국민적 요구와 사회혼돈,그리고 여소야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9개월만에 도중하차시킨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이들 역대 정권의 첫 총리들은 각기 훌륭한 인품과 경륜,애국심 등을 갖고 있었으나 헌법 등에 의한 높은 위상 등과는 달리 뚜렷한 실권이 없어 대통령과 행정 각부 집권당의 틈바구니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일관하다가 대독용,의전용이라는 별칭만 듣고 물러나고 만 것이다.

건국이래 서리를 제외하고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은 총리는 현승종총리까지 모두 24대. 이분들을 재임중의 활동을 중심으로 유형별로 분류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체로 우국지사형은 이범석 변영태,관료형 또는 실무형은 백두진 최규하 노신영,안정형은 남덕우 이현재 강영훈 정원식,추진형은 정일권 신현확,정치형은 장면 장택상 김종필 김상협 등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국민의 최대의 관심은 김영삼 차기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 진용을 인선한데 이어 금명간 단행,내정할 새 정부의 국무총리와 감사원장 안기부장 등에 집중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대의 관심사는 국무총리로서 김영삼정부의 컬러와 국정운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을 뿐더러 「인사는 만사」라고 누누이 강조해온 김 차기 대통령의 인사능력을 국민이 평가,저울질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위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새 총리가 어떤 형이 되든 기본적으로 몇가지 자격은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청렴결백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인사여야 한다. 국민의 지탄을 받을만한 경력이 있어서는 안된다. 둘째 국가발전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개혁의지,특히 부정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지녀야 한다. 아래 위로 눈치를 살피는 몸가짐으로는 어림도 없다. 셋째 국민의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줄 알고 또 나라 안팎의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극복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이 정도 요건을 갖춘 인사라면 연령이나 지역적인 문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을 힘들여 내정했다해도 권한을 주지 않으면 대독용으로 그칠게 뻔한 만큼 총리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주어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 각부를 지휘하며 과감한 개혁과 국민을 위한 공개행정을 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총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국정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소신있게 말할 수 있는 기회와 권한 또한 필수적이다.

김 차기 대통령은 한국병 치유를 통한 새한국 건설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국무총리상은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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