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남북이 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내놨을 때만해도 남북 대결구도에 커다란 전환의 때가 왔다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92년 2월19일은 20년전의 7·4 공동성명이 나올 때와는 근본적인 주변상황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라는 충격적인 사태발전이다.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합의서나 공동선언의 빈 봉투만 쥐고 있을 뿐,화해 교류 협력이나 비핵화 등의 문제에 실질적인 합의를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풀었던 기대에 비해 남북관계의 현실은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애초에 7·4 공동성명이후 20년동안의 대결구도에 숨통을 트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데에는 동유럽 공산권 붕괴에 따른 북측의 체제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냉전 붕괴라는 역사적 전환을 긴장완화와 통일로 연계시키려는 우리측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상의 「악수」는 북측이 체제방어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한 실질적 적대관계 청산을 손쉽게 가져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남북 대결구도의 청산에 가장 큰 장애는 북한의 「핵」에 있다. 북측이 「핵개발의도」를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국제사회의 의혹은 좀더 구체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북측의 플루토늄 추출에 대한 의혹이다.
북한의 「핵」은 그것이 의혹의 대상이건,혹은 「사실」이건 북측이 이용할 수 있는 체제유지용의 마지막 카드임엔 틀림없다. 북측으로서는 체제에 위험부담을 안겨주는 교류나 경제협력보다는 「핵카드」가 보다 효과적인 무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핵」이 남북대화 노력을 압도해서는 안된다는 타협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물론 북의 핵문제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넘겨지고,경제봉쇄와 같은 압력수단이 동원될 때 빚어질 긴장상태는 우려해야 될 일이다.
그러나 북측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한 대화나 교류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북측이 정말 핵개발 의도가 없다면 의혹을 제기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모든 시설을 공개하는 것이 평화스런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1차적인 의무다.
북측은 국제적인 고립과,그에 따르는 경제적 난국을 「핵」이 아니라 남북합의서와 비핵화의 정신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남북 사이에 최소한의 신뢰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화노력의 장기적인 전망을 낙관하고자 한다. 국제사회의 대세가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는 따로,남북한 상호사찰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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