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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사/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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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사/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3.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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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닷새 남았다. 이 닷새가 지나면 6공이라 불렸던 세월은 역사속으로 편입이 된다. 제13대 대통령에게도 「전」이 붙는다. 전 대통령에 전전 대통령에게,또 전전전 대통령을,우리는 갖게 된다. 이것이 우리 나름으로 쌓는 우리 헌정사의 두께일지도 모른다.어떻든,한 정권을 마감하는 잔치아닌 잔치는 진작에 시작이 됐다. 연일 보도되는 청와대 오찬과 만찬,막바지라 손이 큰 선심인사와 무더기 훈장,풀릴대로 풀린 관청의 기강과 이어 터지는 부정·비리사건…. 그런 가운데 대통령은 마지막 지방 순행을 마쳤고,6공의 마지막 내각은 18일에 이미 해단식 사진을 찍어 돌렸다. 남은 예정이라고는 24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 뿐이다.

이처럼 완연한 파장분위기 속에,떠나는 이,물러나는 이들의 감개가 그지 없을 것은 당연한 짐작이지만,떠나보내는 국민들로서도 속깊은 감회를 없을 수 없다. 과연 6공이란,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그 기억이 우리들 마음속에 어떤 색갈로 남을까. 역사속의 6공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

아직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 평가에는 엇갈림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6공의 민주화를 치적으로 들지만,다른 사람은 오히려 그 미흡을 지적한다. 어떤 사람은 국민총생산(GNP)이 몇배로 늘었다는 등의 숫자를 나열하나,다른 사람은 그 속이 비었음을 탓한다. 어떤 사람은 북방외교와 통일정책의 진전을 칭찬하지만,다른 사람은 일을 서둔 나머지 낭비와 혼란이 있었음을 나무란다. 어떤 사람은 6공 지도력의 참을성을 그 장점으로 꼽지만,다른 사람은 그 행태야말로 무위무책의 표본이라고 힐난하다. 자칫 신학논쟁 같은 의견대립이 예상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6공의 평가는 이미 나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6공은 임기중 두차례 총선에서 모두 참패했다. 출범초 13대 총선의 여소야대는 또 그렇다 치더라도,발족 4년의 치적을 묻는 14대 총선에서도 국회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런 뜻에서 6공 대통령은 패장이다. 그 낙인은 국민이 찍은 것이다. 그 이상의 평가는 다시 없다.

6공의 시작과 끝을 대비해 보는 것도 6공 평가의 잣대가 된다.

6공은 6·29선언으로 시작해서 9·18선언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두선언이 다 결단임에는 틀림이 없으나,결단의 영웅은 없다. 다분히 궁여지책·고육지계로 비친다.

6·29와 9·18은 뒤집기로 시작된 6공이 뒤집기로 끝남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당적은 뒤집기를 따라 민정­민자­무소속으로 전전했다. 그 결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보다는,정권을 쟁취당한 꼴이 됐다. 전 정권과는 등을 지고,후계정권으로부터는 눈흘김을 받는다.

이에 이른 과정에서 있은 일들,여기서 파생된 여러 부정적인 현상들을 낱낱이 들 것은 없다. 좌우간 혼란스럽고 음음하다. 그것이 6공 기상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개혁을 외치며 등장했던 정부가 개혁의 대상으로,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며 발족했던 정권이 차별화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음을 본다.

시작과 끝이 이렇게 달라진 까닭을 설명하자면,정치권력의 정당성과 도덕성,시대적 상황이나 철학의 부재 등 다시 신학논쟁 같은 논의를 거듭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전기』라든가,『한 세대는 그 세대 지도자의 얼굴을 닮는다』는 말속에 정답중의 하나가 들어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렇더라도,6공을 위한 변론이 없을 수는 없다. 결코 떠나감에 대한 치레만이 아니다.

경위야 어떠했건,6공은 문민정부로 배턴을 넘긴다. 바야흐로 시대는 민주화의 단초를 연 과도 1기로 부터,민주화의 완성을 향한 과도 2기로 넘어간다. 과도 1기의 어려운 때를 담당했던 6공의 그런대로 제 구실을 해낸 셈이 된다. 그덕에 우리는 민선 대통령으로부터 민선 대통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전통으로 활작됨을 실감한다.

이것이 국민들의 성숙된 정치수준,그들이 민주화 욕구의 결과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6공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면이 없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6공은 비판의 대상이되,부정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같은 신문 글장이가 추가해야할 6공 변론의 항목도 있다. 그것은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6공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가 실린,그것도 가장 혹독한 비판이 실린 저면이 바로 6공이 자랑할 훈장일지도 모른다.

우연챦게도 5년전과 금년은 2월까지의 요일진행이 같다. 그래서 5공이 막을 내린 그 목요일에 6공도 막을 내린다. 제13대 대통령이 취임한 그 금요일에 제14대 대통령이 취임한다. 취임식 장소도 같다.

그러나 역사에는 되풀이가 없다. 되돌림이 있을 수도 없다.

그처럼 새 정권은 달라져야하고,달라질 것을 기대한다. 달라지되,어떻게 달라져야 할지,6공의 감개는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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