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교육열 ” 학교수업은 뒷전/“내자식 대학 간다면” 너도나도 과열/수백만원 지출 아랑곳 「선생님찾기」/현직교사들도 서슴없이 「변칙 돈벌이」 참여학교밖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과외로 고교교육이 멍들고 계층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80년 7·30 교육대개혁조치로 「망국적인」 과외교습행위가 전면금지된뒤 89년 6월 대학생에게 과외가 허용되고,91년 7월에는 학기중 중고교생들의 학원수강 허용여부가 시도교육감의 재량에 맡겨졌다.
이에따라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경기 충북 제주 등 8개시도는 재학생들이 학기중 학원수강을 할 수 있도록 조치,사실상 과외는 전면허용된 상태다.
현재 당국의 단속대상인 불법과외는 현직교사의 개인지도와 학원강사의 학원밖 개별교습행위 뿐이다.
94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학교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현행 30%에서 40%로 확대반영되고 국어 영어 수학비중이 높은 현행 학력고사대신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 본고사가 치러짐에 따라 불법과외는 한풀 꺾이는 듯했다. 그러나 서울대 등 상위권대학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로 본고사를 국어 영어 수학위주로 시행키로 하면서 과외열기는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부분의 학생(77.8%) 학부모(71.8%) 교사(80.5%)들은 국어 영어 수학위주의 대학본고사 때문에 불법과외가 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내자식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학부모들의 과잉교육열과 이기심 등으로 과거와 같이 과외의 양상이 과열되고 있는 형편이다.
과외수업이 보충학습의 기회라는 대의명분을 상실한채 학교교육을 뒷전으로 밀려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최근 부산에서 초중등 장학담당 장학관회의를 소집,신학기를 앞두고 불법 고액과외가 재연될 조짐이 있다며 각 시도교육청에 현직교사의 과외교습행위를 철저히 색출하고 대학생의 경우도 학비보조 수준을 넘는 고액과외는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교육부는 특히 일부 대도시에서 전직교사와 학원강사 등이 오피스텔에 수험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이같은 기업형 과외교습행위를 근절토록 했다.
그러나 불법고액 과외일수록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국으로서도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실제적으로 단속실적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현대사회연구소 교육문화연구실장 손경애씨(39·철학박사)가 최근 펴낸 「고교생의 과외실태조사 연구」에 의하면 과외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조사는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생 1천2백명과 학부모 1천2백명,고교교사 6백명 등 모두 3천명을 표본추출해 가정과 학교를 직접 방문해 이루어졌다.
놀라운 것은 과외받고 있는 42.2%의 학생들중 2.8%는 현직교사에게 1.5%는 대학교수에게 배우고 있을만큼 비밀 고액과외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교습자는 학원강사가 52.8%로 가장 많고 대학생(35.4%) 대학원생 전직교사 등이었다.
학생들의 과외형태는 1대 1 개인지도가 49.1%로 학원수강(42.7%)보다 많았으며 과외는 외국어학원(23.4%) 속셈·주산학원(8.3%) 등에서도 변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주로 영어 수학 국어 등 입시 주요과목을 중심으로 평균 2일에 한번꼴로 2시간 정도의 과외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 평균 1인당 과외비용은 31만5천3백원으로 85%의 학부모들이 가계압박을 호소했다.
이같은 액수는 서울 근로자가구의 월평균소득인 1백32만9천1백원의 23.7%,월평균 학교수업료 5만7백원의 6배에 해당하는 것이다.
특히 5.0%의 학생들은 월 1백만원 이상의 고액과외를 받고 있는가 하면 파출부 수입으로 자녀를 과외시키는 경우도 있어 대조적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박모양(21)은 과목당 1백만원에 「위험수당」까지 합쳐 수백만원의 과외비를 내고 현직교사에게 과외를 받았지만 실력이 모자라 지방대학에 겨우 들어갔다.
과외를 받았다고 성적이 모두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과외효과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28.2%는 5등이상 향상 ▲5.6%는 10등이상 향상됐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5.4%의 응답자는 과외이전보다 오히려 성적이 더 떨어졌으며 60.7%는 성적에 변화가 없다고 답해 과외가 성적향상의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서울 강남일대에서 건축업과 건물임대업을 하는 아버지를 둔 김모양(17·S여고 1년)은 국민학교때부터 피아노과외에 시달려왔다.
유치원때부터 음대생에게 레슨을 받아온 김양은 강남의 K국교에 진학했으나 어머니가 예체능반과 교내콩쿠르가 없다는 이유로 서대문구의 사립 K국교로 전학했다.
중학교때는 예체능계 명문교인 S고에 진학하기 위해 음대강사와 교수들로부터 실기지도를 받는 한편 국어 영어 수학은 과목당 1백만원짜리 비밀과외에 의존했다.
그러나 성적미달로 일반계 고교인 H고에 들어갔다가 「우여곡절」끝에 현재는 S고에 재학중이다.
현직교사에 의한 비밀과외와 학원강사들의 학원밖 과외도 성행하고 있으나 단속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현직교사들은 위험부담과 함께 불법과외를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그만두지 못한다.
전직교사 박모씨(28)는 『과외를 많이 하는 교사일수록 진보적 교육운동이라든지 바람직한 교육풍토 조성을 위한 교사활동에 대해서는 항상 냉소적이었다』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학력위주의 풍토와 치열한 입시경쟁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과외는 계속된다고 지적,▲입시제도 보완 ▲보충수업의 내실화 ▲교육제도 개혁 ▲입시학원의 지역적 편중해소 등 장단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교사가 고백하는 「불법과외」/봉급적어 생활어려움… 쉽게 유혹 빠져/고액교습자 대부분 “명문대 진학” 희망
나는 올해로 재직 3년째를 맞는 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다. 일주일에 20시간 수업을 하고 한달에 본봉 36만원과 교직수당 11만원 보충수업비 등을 포함해 모두 70여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요즘 나는 매주 수·토요일마다 정규수업 4시간과 보충수업 1시간의 일과를 마치는 하오 5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교문을 나선다. 6개월전부터 시작한 과외지도를 하기 위해 잠실로 향하는 것이다.
좌석버스에 몸을 기대고 차창밖을 바라보면 면면이 스쳐가는 사랑스러운 제자들의 얼굴에 마음이 무척 괴롭다. 자신이 왜소해지고 누더기가 된 듯한 참담함이 엄습해온다.
불법과외를 시작한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늘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양심의 가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나를 불법과외 교습자로 몰고 갔다고 생각한다.
지난 91년 2월 K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렵게 잡은 교직이지만 결코 밖에서 생각하는 만큼 소명의식에 충실할 수 있을만한 직장은 아니었다. 교권은 땅에 떨어졌지만 학교에서는 늘 자상하고 근엄한 선생님으로 버텨야했다. 하지만 교문밖을 나서면 아파트 관리비 등을 걱정해야 하는 평범한 생활인일 수밖에 없었다. 야누스적인 나의 이중적인 모습은 번번이 번민과 좌절감을 몰고 갔다.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는 고매한 훈장,그것이 나의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던중 동료교사로부터 『괜찮은 자리가 있는데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망설이다가 결심했다.
매주 두번씩 마주하는 두명의 과외제자들은 결코 스승에 대한 존경심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팔아먹는 장사꾼쯤으로 치부하는 눈빛이다. 한달에 50만원씩의 과외비로 엮어지는 이 학생들과 나와의 관계는 사실상 사제관계라기 보다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계약관계일 뿐일지도 모른다.
강남 J고에서 학급석차 10등 내외의 학력수준을 갖고 있는 이 학생들은 중위권대학을 갈 정도의 실력이지만 이른바 명문대인 Y대·K대에 진학하기 위해 현직교사인 나에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한달 봉급 70만원에 본봉기준 7백%의 보너스를 합해도 1천여만원 밖에 안되는 연봉으로는 사회에서 교사에게 요구하는 품위유지는 커녕 친구들에게 술 한잔 제대로 사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또 매달 27일이면 돌아오는 카드결제일만 되면 텅비는 저금통장을 보며 결혼과 주택구입 등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받고있는 과외보수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앞으로 적당한 자리가 있으면 과외생을 한두명 정도 더 가르치고 싶다.
학교에서 보충수업 1시간 해봐야 7천원 정도밖에 못받지만 불법과외 1시간이면 최소 3만원 이상이 보장되는데 누가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있겠는가.
「신성한」 교직을 수행하는 교사로서 가책을 느끼고 있지만 내가 가르치는 「과외제자」들의 실력이 향상되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조금은 위안이 되겠거니 생각한다.
현직교사의 과외가 불법인줄은 알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불법의 가책을 감당하고 있으며 「불법과외」로 받는 보수 또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여기고 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김현수·장인철·여동은·남경욱·이진동·현상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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