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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고리」/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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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고리」/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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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는 한국이 기네스북에 세계 제1의 「봉투의 나라」로 기록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부정과 비리가 사회 구석구석에 충일돼 있다는 것은 감지돼왔지만 그 폭과 깊이가 그처럼 엄청난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사가 현재 1면에 연재하고 있는 기획물 「부패와의 전쟁」(제2부)은 우리 사회의 부패가 얼마나 구조적인가를 극명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한국사회는 부패의 「먹이의 사슬」에 의해 생명이 영위되는 것 같다. 자연의 생태계는 「먹이의 사슬」이 생존유지의 주요 수단이지만 사회의 생태계는 「부패의 고리」가 뿌리내리면 파괴는 시간문제다. 한국사회가 국제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오늘의 경제전은 국가의 총체적인 경쟁력의 싸움이다. 적당한 부패는 「사회의 윤활유」라는 말이 있기는 하나 우리 사회의 부패는 「적당한」 수준을 넘은지 오래다.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부패다. 이것이 우리의 기업·사회·국가경쟁력을 가속적으로 잠식해가고 있는 주요요인의 하나다. 「부패의 고리」를 들어내지 않고는 국제경쟁력의 회복은 빈말이다. 앞에서 지적한 기획물 「부패와의 전쟁」이 이를 증언한다. 중소제조업체가 공장 하나 설립하는데 요구되는 인·허가 등 절차가 간소화됐다고 하는데 아직도 44개나 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 절차 하나 하나가 「급행료」를 받는 「톨게이트」라는 것이다. 까다로운 창업절차는 건축허가와 준공검사다. 준공검사에서는 건축법규는 말할 것도 없고 소방·위험물·고압가스·폐수·정수·전력 등 안전·환경관계 법규 등도 「돈방망이」가 된다.창업에 소요되는 「급행요금」이 이제는 「협정요금」처럼 정착됐다고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는 인용된 관계자의 경우 건축공사비를 제외한 일반공사비의 10% 수준이었다는 것. 창업에는 자금과 판로확보가 필수적인데 힘든 은행돈을 빌려서인지 꺾기를 당하고도 대출금의 2%를 커미션으로 내놓았다는 것. 또한 처음으로 납품계약을 트는데 소요되는 뒷돈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월 1천만원 수준의 납품이면 적어도 5백만원은 줘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비부터가 미·일·EC 등 선진국이나 대만 등 경쟁상대국에 비해 비경제적이다. 국제경쟁력을 회복하려면 경제전선의 첨병격인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먹이의 사슬」에 겹겹이 묶여 생존 자체가 힘겨운 것 같다. 창업도 숱한 비리의 고비를 넘겨야 하지마는 은행융자와 대기업과의 거래도 늘상 뒷돈이 따르게 돼있다. 또한 관공서와 검·인증기관에도 「봉투」가 들어가야 한다. 은행대출이나 어음할인의 경우 대개 커미션이 대출금이나 할인금액의 2∼3%로 알려지고 있고 금리가 낮은 정책자금의 경우 최고 10%까지 줬다는 조사도 있었다.

외국에 비해 금리가 높은 편인데 커미션 등 검은 돈으로 금융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대기업이나 관공서와의 거래에서는 납품에서 대금영수 때까지의 전과정이 「떡값」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구매부서는 어느 기업이나 관공서든 「노른자위」,악명도 높다. 한국은행과 쌍용경제연구소 등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중 4백여개 상장기업의 기밀비,접대비,교제비 등을 합한 준조세는 1천49억원으로 나타났다. 선거 때문인지 전년 같은기간보다 약 50% 증가한 것으로 돼있는데 당기순이익의 40%에 상당하는 액수다. 『우리는 봉이다』라고 자조하는 중소기업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준조세가 최소한 매출액의 10%,당기순이익의 1백%나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엄청난 부패인가.

부정과 부패의 척결­김영삼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역점 공약사업이다. 실패해서는 안되는 공약이다. 성공하자면 그의 지도력과 추진력에 국민적인 협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부패없는 사회는 국제경쟁력의 회복뿐 아니라 선진화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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