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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부패와의전쟁:17(민원부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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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부패와의전쟁:17(민원부조리:1)

입력
199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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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상 심층추적/도시계획선 따라 엄청난 이권개입/가진자들 투기 노름… 앉아서 수백억 챙겨/“과욕 안부리면 탈없다” 부정불감증놀라울만큼 거대하고 구조적인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민원 부조리이다. 민원은 국민이 행정기관을 통해 받아야 하는 당연한 봉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봉투가 없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힘있는 계층만이 공무원과 결탁,부와 이권을 챙기는 도구로 전락한게 현실이다. 그래서 민원부조리는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불평등 구조가 형성되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원부조리중 도시계획 분야는 건축분야와 함께 부조리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다.

단지 건축부조리가 피해계층이 가진자에서부터 못가진 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반해 도시계획 관련부조리는 가진 자들만의 투기노름이라는 점에서 양상이 다를 뿐이다.

일만 잘 성사되면 수억에서 수백억원을 앉아서 챙길 수 있을 정도로 이권의 덩어리가 큰데다 특혜를 주는 쪽(공무원)이나 받는 쪽 모두에게 「배부른 장사」가 되기 때문에 말썽이 날 여지도 적다.

그러나 한건이면 평생이 보장되는 만큼 특혜를 주기까지의 결정과정은 매우 은밀하고 합법을 가장하기가 일쑤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국이 크렘린이라 불리는 이유는 도시계획의 변경이나 결정과정이 극도의 보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큰 이권이 개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역대 도시계획국장중 6명이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도중하차한 점은 그러한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도시계획관련 부조리의 출발점은 땅이다. 땅의 가치를 높이고 죽이는 일이 바로 도시계획이기 때문이다. 6공 최대의 의혹 사건으로 꼽히는 수서사건은 한보주택이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를 대규모로 사들인 것이 단초가 됐다. 한보는 당시 수서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다는 점을 미리 알고 문제의 땅을 산뒤 조합주택부지로 분양받기 위해 정치권 등에 무리하게 로비를 하다 들통이 났다.

이처럼 도시계획관련 부조리는 각종 개발계획 정보의 사전 유출이나 주거지역·준공업지역의 상업지역 지정,자연녹지·풍치지구의 해제,형질변경 등 용도지역·지구 및 각종 도시계획시설의 결정·변경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최근 포천군은 일부지역에 대한 도시계획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영중면 양문리 일대 생산녹지지역 3만평을 일반 거주지역으로 지정키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생산녹지가 냉수용출답(비만오면 수렁이 지는 밭)에 경사지여서 주택건축이 불가능한데도 군이 용도지역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전체부지중 1만여평을 자신과 가족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이 지역의 한 유력인사가 거액의 뇌물을 건네줬기 때문이라며 검찰 등에 탄원서를 제출해놓고 있다. 이 지역은 현재 평당 5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주거지역으로 변경될 경우 50만∼70만원으로 단숨에 지가가 10∼15배 가량 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막대한 차익 때문에 각 시도에는 용도지역 변경을 둘러싼 민원이나 청탁압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일선 22개 구청과 지역주민들이 상업지역을 요구하고 있는 곳은 무려 1백82개 지구 2백66만4천평에 이르고 있다.

상업지역으로 지정되면 유흥업소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게 돼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만큼 땅가진 사람이라며 누구나 「욕심」이 생기고 되기만 한다면 돈봉투의 두께쯤이야 대수가 아닌 것이다.

이에반해 각종 개발계획의 사전 정보유출은 비교적 「해먹기」가 쉽다. 서울시의 한 고위간부는 『도시계획이 일반에 알려지기전 6개월 가량 걸리는 입안과정에서,또 외부용역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일부 공무원이나 용역을 맡은 민간인이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개발지역의 땅을 미리 매입할 소지는 너무도 많다』고 실토한다.

용역회사가 개발지역 땅투기를 한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84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속칭 「대지사건」. 당시 서귀포시 도시기본계획 등 제주도 개발과 관련,59건(용역비 10억원)의 용역을 맡았던 대지종합기술공사 대표 이정식씨가 개발예정지역 등 10만여평의 땅을 매입,떼돈을 번 사건이다. 꿩먹고 알먹는 장사였던 셈이다.

이씨는 지난해 4월 후처에게 피살돼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지난 89년에는 합참본부 군사시설 담당 군무이사관 등 군속 2명이 동서고속전철계획안 서해지역 5해역 사령부 이전계획안 등 군사기밀을 부동산업자에게 넘겨줬다 적발됐고 일산·분당 신도시개발 때는 정부발표 이전에 땅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부동산 투기열풍이 불 때마다 개발계획 유출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빈번하고 광범위하게 행해지는 비리는 공원용지·시장·학교부지 등 소규모 도시계획 시설의 변경·해제부문이다.

이해관계가 특정지역에 국한되고 합법으로 치장하기가 쉬우면서도 효과는 크다. 언론에 보도되는 이와관련된 특혜의혹은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만큼 비리의 냄새가 짙고 또 그 수혜자가 사회지도층 인사인 경우가 많다.

지난해 4월 부산지검 울산지청에 구속된 양산구청 전 건축과장 김연제씨(40)는 양산군 하북면 도립공원지역 2만3천평에 아파트를 짓게 해달라는 건설회사 대표에게 1억원을 받고 녹지해제를 추진하다가 적발됐다. 당시 김씨 집에는 일반 공무원이 상상도 못하는 액수인 현금 3천5백만원과 50돈쭝 황금열쇠가 나와 검찰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유혹의 한가운데서 초연할 수 있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며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뒤탈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시계획분야는 공무원이 직접 관련되는 경우외에 수서사건에서처럼 떡고물은 제3자가 챙기면서 외압·청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각종 민원이 끊길 날 없는 서울시 도시계획국은 국회의원·직능단체 대표 등으로부터의 청탁이 그칠새가 없다고 실무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처럼 부조리가 뿌리깊이 도사린 도시계획 분야는 사익이 공익에 우선 할 때 해당지역,나아가 국토의 종합개발계획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폐해가 크다. 그러나 도시계획 자체를 하늘이 대신해줄 수 없는 만큼 이 모든 것이 관련 공무원 개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딜레마인 것이다.<김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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