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피해자진술로 기소」 관행제동/엄격한 인권보호 강조 주목범죄사실과 배치되는 증거가 있더라도 피의자가 범행일체를 자백하고 피해자도 범인이 틀림없다고 진술한 경우 피의자를 기소해온 수사기관의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상원대법관)는 13일 친구의 부인을 강간하려다 반항하자 칼로 찔러 살해하려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2심에서 모두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김기준피고인(27·무직·경북 안동시 평화동)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김 피고인의 자백,피해자의 진술 등으로 미루어 김 피고인이 범행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나 법관에게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를 남겼다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대구고법으로 사건을 돌려 보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과학수사를 토대로한 엄격한 증거주의와 인권보호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피고인은 9년 12월17일 하오 4시께 군대친구인 경북 안동시 송현동 김모씨(26·회사원) 집에 찾아가 혼자 있던 김씨의 부인 강모씨(24)를 흉기로 위협,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등산용 칼로 온몸을 세차례 찔러 살해하려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무기징역이 구형됐었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김 피고인이 도주할때 떨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흰색 마스크에서 타액을 채취,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혈액감정을 의뢰한 결과 김 피고인의 혈액형과 다르다는 통보를 받았으나 김 피고인의 자백과 강씨의 진술 등 정황증거가 유죄입증에 충분하다고 판단,살인미수·특수강간 미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2심 법원도 『김 피고인의 임의성 있는 자백과 피해자의 진술 등 정황증거가 유죄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며,법정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소극적 부인태도를 보인 점도 유죄의 심증을 갖게 한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원심은 혈액감정 결과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증거들로 미루어 유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만큼 국과수의 감정결과는 사실인정에 배치되는 결정적 장해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갖게할 만큼 증명력을 지닌 엄격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과수의 감정결과는 김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의심을 갖게 하는 만큼 완벽한 유죄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사기관과 법원은 과학수사가 정착되지 못한 현실 등을 고려,유죄의 심증이 강한 경우 대부분 유죄로 인정해왔다』며 『이번 판결은 이같은 관행이 계속될 경우 수사기술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엄격한 증거주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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