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실상 심층추적/갈수록 「손」 많아지고 「방법」도 대담/「돈봉투 관행」 언제까지/4백 상장기업 한해 떡값 1천49억돈봉투가 둔갑했다. 미풍양속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래서 돈봉투없이 장사를 할 수 없다. 불법사실로 눈감아 달라,돈을 대출해달라,납품을 받아달라는 부탁 때문만은 아니다. 도덕적으로 매장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갈수록 돈을 요구하는 손이 많아지고 요구방법도 담대해지고 있으며 안주면 『고마움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까지 매도된다고 중소기업들이 하소연한다.
인천에서 봉제공장을 하고 있는 장모사장(47)은 『경찰서에서 너무 여러명이 나와 귀찮기도 해서 시치미를 한번 뗐다가 혼쭐이 난뒤로 「쇠먹는 똥은 삭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서에서 나왔다」며 한사람이 찾아왔어요. 처음보는 사람이라 커피만 대접하고 돌려보내려고 했더니 「이 사람 상도의도 모르는구만. 못쓰겠어」라고 호통을 치더라구요. 나도 화가 나 버텼더니 그 다음날부터 틈나는대로 전화를 하고 자주 찾아오는 거예요. 겁이 나더라구요. 마침 출입하던 다른 형사분이 화해를 주선,평소보다 5배 비싼 50만원을 주고 해결했어요. 그뒤로는 말도 사근사근해지고 교통단속같은 민원에 돈을 깎을 수 있도록 힘도 써줘요. 돈봉투는 반드시 효과가 있습니다』 부패와 부조리가 이제는 뒷거래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분배정의와 민간질서로 승격한 꼴이다.
80년 후반 사회기강이 흐트러지고 부동산 졸부가 양산되면서 뇌물에 대한 죄의식도 마비되고 있다.
경찰서나 구청 군청 소방서 심지어 각종 인증기관에도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한다. 거래은행이나 거래기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심지어 봉투를 주지않는 「파렴치한」에게는 상납의 의무와 수뢰의 권리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실제 은행이나 기업,그리고 관공서에서도 뒷돈을 부서운영비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이 경우 뒤탈이 나더라도 받아온 사람의 죄를 면제해주는게 관례다. 최소한 심정적으로는 그렇다. 분배정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 먹다 걸리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썩었다」는 호된 비판은 물론이고 「뒷일」도 돌봐주지 않는다.
「부패와의 전쟁」이 연재되면서 한국일보사에는 격려를 겸한 제보전화가 잇따랐다. 대개 『나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너무 못살게 굴어 회사문을 닫아야겠다』 『봉투왕국이다. 모두가 썩었다』는 푸념에서 『먹이사슬은 바위보다 단단하다. 윗물이 맑아야 깰 수 있다. 새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서울의 준공업지역에서 10여년째 기계부품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최모사장(41)도 제보자중 한 사람이다. 『절대로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과 함께 그는 「뇌물일지」를 공개했다.
『지난달의 경우 60여곳을 챙겼습니다. 보통 30∼50곳 정도인데 신년인데다 설날까지 끼여서 유난히 많았습니다. 액수는 한 5백만원 됩니다.
사실 돈봉투를 건네면서도 죄의식은 전혀 못느꼈습니다. 그동안 그래왔고 다른 업체들도 그러니까요. 받는 쪽도 대부분 당연하다는 투고요』
그가 「돈봉투관계」를 맺고 있는 곳은 크게 2종류다. 거래은행과 제품을 발주해주는 원청업체 같은 생산활동과 직결되는 곳과 관공서와 인증기관처럼 간접적인 관계를 가진 곳이다.
관공서는 경찰서와 파출소 구청 소방서 노동사무소 등 10여기관. 각 기관 여러명이 나와 실제 돈봉투를 정기적으로 주고 있는 곳은 20여곳을 넘는다. 예를들어 경찰서와 구청의 경우 보안과 형사과 정보과 그리고 산업과 건축과 환경과 등 각각 3∼4곳에 달한다. 그는 『그나마 옛날에는 「나와바리」(관할의 일본말)를 정해 한명정도만 나왔는데 요즘에는 별관계가 없는 사람까지 마구잡이로 나와 손을 벌린다』고 말한다. 「빌미」가 없는 단순 방문일 경우 10만원을 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볼때 구청에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또 각종 공업형식을 승인해주는 인증기관에는 횟수가 적은 대신 목돈을 쓰고 있는데 『검사원을 모시고 와서 식사대접하고도 돈도 준다』고 한다. 돈은 보통 50만원에서 1백만원 수준이다. 『검사는 곧 돈이며 돈을 준비하면 검사준비가 별 필요없다』는게 그의 경험칙이다.
최 사장의 회사는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20억원 정도,돈봉투 액수는 2억원을 넘는다. 거래처와 은행 등에 쓰이는 영업비가 1억2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 수준이고 나머지 4∼5%는 관공서와 인증기관에 투입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매출액의 10% 이하였는데 요즘들어서는 매년 1∼2%씩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과 쌍용경제연구소 등이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중 4백여개 상장기업이 지출한 기밀비 접대비 교제비 등을 합한 준조세는 1천49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에 비해 50.6%나 급증했다. 당기순이익의 40%에 달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뇌물을 포함한 비공식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장기업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중소기업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준조세는 최소한 매출액의 10%,당기순이익의 1백%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물론 수출경쟁력까지 약화시키는 수준이다.
신발업체인 A사의 총무부장인 박모씨는 『돈뜯는데도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얼마주면 얼마까지 깎아줄 수 있다』는 협상의 여지가 없는 구체적인 제의를 하는 「깍쟁이형」이 있고 교통경찰은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잔돈은 걱정말라. 거슬러 주겠다』는 「추태형」,요즘 극성을 부리고 있는 환경공무원은 『이거 문젠데…』라는 「위협성」이라고 정리한다. 또 소방공무원은 공장을 둘러본뒤 『한번 들어오셔야겠어요』라는 「은근형」이고 전기와 전화 관련공무원은 불법사실을 적발한뒤 『내가 싸게 공사를 대신 해주겠다』는 「얌체형」이라고 말했다.<김경철기자>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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