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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회는 썩지않는다/최규장 재미 칼럼니스트(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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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회는 썩지않는다/최규장 재미 칼럼니스트(특별기고)

입력
199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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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가 되면 책이 안팔리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정반대다. 책값은 노는데 드는 비용보다 싸고 쾌적한 도서관에 앉아 이것저것 뒤적이며 머리를 채우는 것이 비싼 식당에서 배를 채우거나 여행을 나서는 것보다 헐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몸보신하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마음을 살찌게 하는 책값에는 인색한 편이다.제대로 된 서점수는 손꼽을 정도이고 책방이래야 구멍가게여서 만화나 참고서가 아니면 내용이 가벼운 것이거나 「법서」따위가 꽂혀있는게 고작이다. 법서란 육법전서가 아니라 돈버는 법,합격하는 법,오래사는 법,행복해지는 법. 말하자면 사람들이 공부하지 않고 머리 좋아지는 손자병법 따위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의 지하철을 타보면 책 읽는 스타일이 재미있게 비교된다. 뉴욕의 기찻간에서는 제법 두텁고 큰 책을 거침없이 펴드는 사람이 눈에 띈다. 도쿄전철을 타보면 승객들이 차에 오르기 무섭게 책을 꺼내는데 손바닥만한 작은 책들이 태반이다. 서울 지하철을 비집고 타면 크고도 가벼운 것을 훑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비좁은 찻간에서 기를 쓰고 펼쳐든 신문에서 흥밋거리나 뉴스를 훑는 모습들이 많다. 누가 이기고 누가 무슨 감투를 쓰고 누가 얼마나 부정을 했느냐는 얘기들을 좇는다.

무거운 것을 읽으면 골이 쑤신다. 역사의 교훈이나 마음의 양식보다 흥미롭고 말초적인 읽을거리를 찾는다. 오죽 책을 멀리하는 국민이면 「책의 해」를 선포했겠는가.

바다 건너 일본인의 몸에 밴 독서열과 공부열은 딴판이다. 학원이다 컬처센터다 벤쿄카이(면강회)를 쏘다니며 갈고닦는 자기연마는 그렇다치고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공공도서관의 운영은 놀랍다. 골고루 갖춘 서가에 낮에는 주부와 정년퇴직자,밤에는 직장인과 학생이 찾아든다. 전인구 2명중 1명이 해마다 한번이상 도서관을 찾는다는 통계다. 인구 1인당 월 1권의 책을 독파하는 엄청난 독서량이다. 공공도서관의 장서만 1억3천만권­. 서울 압구정동거리가 아무리 도쿄의 긴자(은좌)못잖은 환락가로 번쩍인다한들 8백만권이 못되는 우리의 공공도서관이고보면 우리네 정신세계의 빈취는 면할 길이 없다.

김영삼 차기 대통령은 새해구상을 위해 쉬러 갈 때 앨빈 토플러의 「권력의 이동」 등 세권의 두툼한 책을 지니고 갔었다한다. 다행스런 일이다. 커다란 햄버거를 게걸스레 먹는 클린턴식성은 우리에게 잘 알려졌어도 갓 취임한 미국의 젊은 대통령이 무슨책을 좋아하느냐는데 대한 보도는 별로없다.

한 기자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성서 다음으로 중요한 책 한 권을 꼽는다면?』

읽지 않은 책도 좋다는 여운을 둔 질문이었다.

『마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몇년에 한번씩은 꼭 읽어왔다』

대통령은 두가지를 한대답에 담았다. 정치인에게 물으면 흔한 책이 플라톤의 「공화국」이기에 클린턴 대통령의 대답은 이외였다. 로마제국말기의 군인이요 철인이며 황제가 된 저자의 명상록은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는 무미건조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7년간이나 지낸 전쟁터에서 쓴 일종의 진중 훈요집이다. 플라톤의 책은 그의 천재적인 머리속에서 나온 책이지만 황제의 명상록은 딱딱해도 피눈물 고인 체험의 기록이었기 때문에 클린턴이 택한 듯 싶다. 이책은 로마제국의 경제,종교,도덕이 일시에 무너져 내린 최고황금기(AD 96∼180)의 마직막 황제로서 자기 스스로에게 외친 명상록이다.

문민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터진 우리 교육계의 탁류는 양심의 마지막 보루가 썩어 문드러진 모습을 보는듯 하다. 마치 나라의 ROK문패를 「총체적 부패공화국」­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으로 내걸판이라는 자조섞인 농이 나돌 정도이다.

이미 총체적 위기란 말도 자주 써왔지만 부패와의 전쟁은 안으로부터 썩어드는 암적공포로부터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는 우리의 으뜸가는 싸움이다. 책의 해를 맞아 우리는 부패와의 전쟁에 이기는 첫해로 삼음직하다. 책읽는 국민운동으로 부패를 추방하자는 뜻이다. 국민이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사회는 썩을 수가 없다. 부패하는 마음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을 채우려는 황금만능의 찰나주의에서 싹튼다. 로마제국의 말기현상처럼 땀흘리지 않고 소비·향락문화에만 탐닉하는 물신주의의 극복은 아우렐리우스의 경구대로 스스로를 향한 국민가슴마다의 명상에서 찾아야한다. 가벼운 것만을 찾는 이에게 아우렐리우스는 인생은 댄싱이 아니라 레슬링이라고 말했다. 책과 더불어 사색에 침잠할 때 부패는 사그라질 수 있다. 문민시대의 여명은 책읽는 문민문화로부터 밝아올 것이다. 책읽기 운동에 지도층이 앞장서야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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