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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부정과 대학의 자율/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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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부정과 대학의 자율/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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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입시부정 수사를 지켜보노라면 고구마줄기에 달려 나오는 고구마들을 연상케 한다. 한개의 줄기만 뽑아들면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형세다.부정입학의 조직과 수법도 각양각색이다. 수사가 계속 된다면 얼마나 많은 관련대학과 부정입학의 조직,그리고 부정학생들이 드러날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사건 초기에 느껴야했던 충격과 분노는 사라지고,저러다가는 이 나라 사학의 기틀이 통째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해서 겁까지 난다. 대학의 총체적 부패마저 피부로 느껴진다.

연 4년째 터져나오는 사학들의 입시부정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대학의 자율화와 무관하지 않다는데서 대학에 대한 위기의식마저 지울 수 없다.

사학들의 입시부정이 극에 달했던 것은 60년대 중반이다. 서울에 큰 건물이 없던 그 시절에 높고 규모가 큰 건물이 생겼다하면 대학건물과 캠퍼스였다. 농촌에서 소팔고 논밭팔아 대학에 진학했다. 우뚝우뚝 솟아나는 대학건물에 우골탑이란 오명이 붙은 것도 그 무렵이다.

대학입학 정원은 있으나마다였다. 등록금 책정도 대학의 마음대로였다. 청강생을 정원의 2배나 뽑고 돈이면 해결되는 부정입학이 성행했었다.

그러나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대통령 정부는 제멋대로 식의 대학팽창과 비리적 운영에 제동을 걸었다. 학생선발 권한·정원 책정권한·등록금 조정권한 등 이른바 대학의 3대 핵심적 자율권한을 몰수했던 것이다.

「5·17계엄 확대조치」로 권력을 휘어잡은 신군부가 5공으로 등장하면서 부정과 비리로 대학을 운영했던 사학재단에 또 한차례 메스를 가하면서 사학들의 입시부정은 20여년동안 뜸한듯 했었다.

그런데 87년 「6·29선언」으로 대학에 3대 자율권한이 단계적으로 되돌려지면서 89년부터 「60년대식」의 입학부정이 또다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89학년도 입시에서 고교내신 성적위조와 대리시험으로 한양대와 경희대에 부정입학사건이 터지더니 그해 9월 동국대에서 총장과 재단이 결탁,46명을 부정입학시키고 40여억원을 챙긴 사건이 터졌었다.

90년에는 고려대의 교수 자녀 부정입학사건·한성대의 94명 부정입학사건(32억원 수수)·지방대 대학원 입시정사건까지 터졌으며 91년에는 건국대와 성균관대가 대학차원에서 대규모 부정입학을 자행,수십억원을 받은 사건이 터졌다. 그해에는 서울대·이화대·경희대·서울시립대학 등의 음대에서 예능계 입시부정까지 꼬리를 물었다. 이화대의 육·홍·김 3여자 교수들의 부정입학 사건도 생생히 기억난다.

사학들이 그처럼 갈구했던 대학자율권한 회복이 이처럼 입시부정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정말 보통일일 수가 없다.

자율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제약받지 않고 스스로의 행위를 제어한다는 뜻이다. 대학에 자율권한을 되돌려주니까 돈받고 시험성적을 멋대로 조작해 학생을 마구 받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대학,특히 사학들이 자율기능의 수준이 이처럼 저능아 수준이라면 그러한 사학들에까지 자율을 되돌려준다는게 「돼지에게 진주」일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수준에 달한 대학의 자율화까지를 후퇴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수록 대학의 자율화는 촉진돼야 하고 그렇지 못한 대학을 도태시킬 근본적인 대학의 개혁을 시작할 때다. 4년째 지속되는 입시부정이 대학의 곪집을 수술하고 선진대학으로 가는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만 된다면 이번의 입시부정은 차라리 잘 터졌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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