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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부패와의 전쟁:14(중기 목죄는 부조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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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부패와의 전쟁:14(중기 목죄는 부조리:3)

입력
1993.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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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상 심층추적/일감확보 「떡값」이 좌우/돈안주면 우수업체도 퇴짜맞기 일쑤/10억 하청대가,아파트 한채까지「떡값의 경제학」을 모르고서는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이해할 수 없다. 수주와 납품단계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는 「떡값 경제학」의 전형이다.

일감은 중소기업에 있어 생명줄과도 같다. 영업실적이 엉망인데도 수십억원 내지는 수백억원을 융자받고 재테크만으로도 거액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대기업과는 사정이 다르다. 단 한건의 납품계약으로 회사의 존폐가 좌우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은 일감을 움켜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떡값을 주고라도 일감을 따기만 한다면 감지덕지한 일이다.

입찰에서 수주계약,납품에 이르기까지 종횡으로 얽혀있는 「떡값」 거미줄은 중소업자들의 목을 사정없이 옭아맨다. 떡값이 없으면 우수품질의 신제품도 퇴짜를 맞고 떡값이 충분하면 무자격업체도 수억원대 공사를 따낼 수 있다.

서울에서 전기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사장(45)은 창업초기의 잊지 못할 경험이 하나 있다. 『최고급 성능의 전기제품을 개발해 여러 대기업을 찾아 다녔지만 납품계약에 선뜻 응하는 기업이 거의 없더군요. 떡값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뒤의 일이었습니다』 품질만을 믿고 덤벼들었다가 큰코 다친 케이스이다. 김 사장은 결국 구매담당 책임자에게 납품가의 10%에 달하는 사례금을 집어줬다. 이젠 거래업체가 10여개로 늘었다. 김 사장은 『인건비보다도 떡값 부담이 더 클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건설업계의 입찰과 수주에서 오가는 검은 돈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 기계부품 생산업체의 영업부장 정모씨(35)는 「떡값 경제학」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최근 서울의 한 구청이 발주한 수도급수 시설공사에 입찰해보니 10여개 참가업체중 적격업체는 4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바람만 잡고 돈을 뜯는 입찰브로커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2백만원씩 주고 결국 7천만원에 공사를 따냈으며 해당부서 관계자들에게는 낙찰가의 3%인 2백10만원을 사례비로 주었습니다』

정씨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 매출목표를 40억원으로 잡고 있는데 「떡값」으로 5억여원 정도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주관청의 낙찰예정가와 업체의 응찰가격은 좀처럼 차이가 나질 않는다. 예정가격은 최종 낙찰전까지 밀봉돼 책임공무원의 금고속에 보관되지만 응찰업체라면 사전에 관청의 예정가격쯤은 이미 알고 있는게 상식이다. 만약 수의계약이라면 업체들간의 로비성 상납은 더욱 치열해진다.

정부투자기관이나 민간기업이 발주한 공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건설비업체인 P사는 최근 국내 모공사의 각종 공사입찰자격을 얻기위해 조사팀으로 나온 직원 2명에게 2백만원을 준뒤 중소기업으로는 파격적인 B급업체 자격을 얻어냈다. 『무자격업체라도 우리가 보고서만 잘 써주면 좋은 등급의 입찰가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조사직원들의 말이었다.

이후 이 업체는 5천5백만원 규모의 공사를 「무사히」 낙찰받고 떡값으로 주무부서인 자재구매팀에게 3백만원,검수부 직원에게 1백만원,입찰안내를 맞아준 브로커에게 1백만원 등 총낙찰가의 10%를 지불했다.

경쟁입찰이 거의 없는 민간발주공사의 부패는 더욱 노골적이다. 대형 공사일수록 각종 자재와 장비,인력 등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들의 수가 많고 경쟁이 심해지게 된다. 그만큼 원청업체 직원들이 챙길 수 있는 「떡값」 규모도 커지게 되는 셈이다.

최근까지 건설자재 납품업을 해온 김모씨(42)의 말. 『대형 건설업체는 하청 납품업자에게 총공사비의 85%를 주도록 돼있지만 실제 지급액은 50∼60%에 불과하다. 차액은 하청담당 직원이 챙기거나 회사방침에 따라 비자금으로 조성된다. 하청업자들로서는 다음 공사를 위해 출혈도 감수해야 하며 적자액은 다시 자신들의 하청업자에게 같은 방법으로 떠넘긴다』

떡값은 꼭 강요에 의해서만 주는 것은 아니다. 훗날을 위해 알아서 기는 식의 떡값수수가 대부분이다. 약자인 중소기업으로서는 평소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 놓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모종합상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모씨(30)의 체험담. 『납품업체로 선정받기 위한 중소기업의 공세는 지연·학연의 동원에서부터 5백만∼6백만원의 용돈과 고급 술세례까지 다양하며 10억원 단위의 하청대가로 아파트 한채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명절 때면 어느 틈엔가 책상서랍 등이 봉투로 가득해지며 집으로 찾아와 가족들에게 해외여행 티켓을 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의 떡값은 해당부서장까지 가는 경우가 보통이다. 납품가격의 10∼20% 범위내에서 부장·과장에게 50%,실무자에게 30%,기타 감독부서에 20%씩 배당한다. 현금을 온라인으로 보내기도 하고 2백만∼3백만원짜리 골프채 세트를 선물하기도 한다. 거래처 인사들의 결혼·생일 등은 물론 자녀입학,친척사망 등 경조사를 빠뜨려선 안된다. 국내 정상급 자동차회사의 한 간부는 2년전 부친상 때 하청업체로부터 5억원의 조의금이 걷힌 것으로 알려져 물의가 일자 타부서로 전보되기도 했다.

백화점 납품은 중소기업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의류와 완구,신발 등 제조업자들은 매장 영업직원의 낙점을 받기 위해 술과 금품공세를 펴면서 생산원가의 50%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납품하곤 한다. 일부 직원들은 떡값이 적을 경우,판매부진 등 엉뚱한 이유를 들어 반품하거나 대금지불을 지체하고 심지어 거래선을 지체하고 심지어 거래선을 바꾸기까지 한다. 『몸은 피곤해도 매장근무 1년이면 몇백만원 만지기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백화점 직원 사이에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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