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민주선거 거국 연정구성/권력분산 방법·군경태도등 난제많아인종차별과 종족간 유혈충돌로 얼룩져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부와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관한 대타협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언론은 최근 양측 비밀협상에서 내년중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선거를 실시한뒤 흑백간의 거국연정을 구성하는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남아공정부와 ANC 관계자들이 확인한바에 따르면 양측은 94년 4월 이전에 흑백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선거를 실시해 3백년간 지속되어온 소수백인 지배를 종식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선거에 참여한 정치세력들은 득표비율에 따라 권력을 공유하는 거국과도연정을 수립,99년까지 5년간 지속한다는 구상이다.
거국과도연정이후에는 다수결 원칙에 따른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세력에 의한 통치를 보장하며 대신 지방정부가 상당부분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 미국식 연방제를 채택,백인거주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할 계획이다.
양측은 또 ▲지난해 5월 중단된 모든 정치세력간의 협상을 올해 3월이나 4월중 재개 ▲6월까지 흑백 정치인이 함께 참여하는 과도행정기구를 구성,공정한 선거제도 마련과 비밀경찰 및 국영방송의 중립방안을 강구 ▲10월까지 과도헌법과 인권관련 법안을 제정 ▲94년 4월이내에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과도정부 구성 ▲95년 4월까지 2000년이후의 정치일정과 체제를 규정할 헌법을 완성하는 등 구체적인 일정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합의에 따라 그동안 인종차별 종식의 대원칙만 확인한채 구체적 방안을 놓고 난항을 거듭해온 흑백세력간의 정치협상은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됐다. 그동안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인종이 다양하고 역사와 문화가 상이한 남아공에서 서구식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백인들의 거부권 보장 등 영구적인 권력 공유를 주장해왔다. 이에 반해 ANC는 선거를 통한 승자가 권력을 장악하는 완전한 서구식 정치체제를 주장해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양측이 서로의 입장에서 한발씩 물러나 타협을 이룬데 따라 1652년 백인들의 정복이래 계속되어온 인종차별은 막을 내리게 됐다.
양측의 타협안은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아직 몇가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우선 시한부 권력공유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권력분산의 구체적인 수준과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견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 ANC는 만델라의 전 부인 위니 만델라가 이끄는 급진좌파세력을,데 클레르크의 국민당 정부는 극우보수당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주요 정치세력의 하나인 잉카타 자유당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7백만 줄루족을 배경으로 해 망고수투 부트레지가 이끄는 잉카타 자유당은 선거를 거치지 않고 각 정파가 임의로 선정한 대표들 사이에서 헌법을 제정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나 ANC는 잉카타당이 끝내 타협을 거부하면 협상에서 배제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 초래될 폭력사태는 정치적 불안요인으로 남게 된다.
또 하나의 난제는 흑흑갈등을 빚어온 ANC와 잉카타당 사이의 화해와 백인지배를 지탱해온 비밀경찰과 군사정보기관의 태도이다. ANC와 잉카타당은 지난 7년간 1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유혈충돌을 벌여온 터여서 감정대립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이다. 흑인세력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이들의 충돌을 배후 조종해온 것으로 알려진 비밀경찰과 군정보기관이 권력에서 배제되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도 앞으로의 정치적 안정을 가름하는데 주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산적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ANC와 백인정부는 대체로 낙관적인 입장이다. 지금까지 협상이 결렬된뒤 가열된 유혈사태의 경험에 비춰볼 때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내전의 상태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주요 정치세력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불안의 와중에서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사정은 이번 타협에서처럼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도 정치세력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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