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실상 심층추적/비리 만연한 사회… 죄의식조차 마비/돈안주면 되는 일 없다/창업서 납품까지 곳곳 「기생충」/매출 10% 뇌물성 경비로 뜯겨/업무 막힐 때마다 「봉투」 필수적온갖 부패와 부조리로 나라 전체가 썩어들어가고 있다. 최근 터진 대학입시 부정사건은 전국적으로 만연된 거대한 부패구조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현상은 비단 한 두 분야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의료 문화 체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거대한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각종 부패와 부조리가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부지불식간에 관행화되어 이제는 구조적 현상으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이같은 부정부패와 각종 부조리를 깨끗이 씻어내 버리지 않고서는 참다운 민주화의 완성도,선진국 진입의 실현도 결국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동안 세계 각국의 부정부패 척결사례와 교훈 등을 살펴본 「부패와의 전쟁」 제1부 시리즈를 마치고 시각을 국내로 돌려 「부패와의 전쟁」 제2부를 시작한다. 「제2부」에서는 먼저 우리 경제의 뿌리인 중소기업을 짓누르고 있는 각종 부패·부조리의 현황과 개선방안 등을 심층 보도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대기업에 있어 중소기업은 먹이의 대상인가,협력의 반려자인가.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한 기업인은 『못된 지주와 간교한 마름에게 얽매여 사는 현대판 소작농』이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우리는 봉』이라는 말도 했다.
뜯어 가는데도 많고 뜯기는 돈도 엄청나다. 경기침체로 영양상태(경영)는 나빠져만 가는데 중소기업 주변에서 서식하는 악성 기생층군은 계속 늘어만 간다. 이미 여러명의 중소기업인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도 하루에 30여개의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있다.
중소기업은 경제의 뿌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뿌리는 썩어 들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은 창업단계에서부터 물품을 만들어 납품한후 대금을 받을 때까지 단계 단계마다 수많은 「기생충」들에게 시달린다.
경제계에 조금이라도 관계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기업부패가 극에 달해 있다고 말한다. 이 틈에서 중소기업들은 고통받으며 신음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대금결제 등 거래조건은 나빠지는데 구매담당 실무자의 금품요구는 더욱 잦아졌다. 관공서와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시달림도 여전하다. 불경기로 장사도 잘되지 않는데 「쉬파리」들의 공세는 오히려 심해졌다고 하소연한다. 중소제조업체의 경우 돈봉투 향응제공 등 뇌물성 경비의 지출규모가 연간 외형의 1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위치 전문생산업체인 P사(인천)의 박 사장은 요즘 사업을 그만둘까 심사숙고 하고 있다. 최근 갑자기 심해진 구매담당 실무자들의 횡포때문이다. 『생트집을 잡으며 납품계약을 미루길래 자재과와 검수과를 돌며 실무자들에게 봉투를 건네 주었지요. 일이 다 끝난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제는 경리과에서 대금결제를 미루지 않겠습니까. 또 인사를 했지요 뭐. 그때서야 끊어준게 4개월짜리 어음이었어요』 박 사장이 고객(중견전자업체)의 어려움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큰명절이나 여름휴가 때마다 관계실무자들에게 인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용돈도 보내고 술도 산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온갖 조건을 달아 「자발적인 뇌물공여」를 유도하는데는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
이같은 심정은 박 사장 뿐만 아니다. 업계의 납품비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들어 더욱 심해진 느낌이란다. 불경기를 핑계로 내세워 납품계약 취소 품질관리강화 등의 엄포를 놓는데는 피할 방법이 없다.
완제품 납품의 경우에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부기관인 조달청에서부터 재벌그룹의 백화점이나 종합상사에 이르기까지 납품과 관련된 비리와 부조리가 관행화되어 버렸다. 중소기업이 백화점에 자기 물품을 납품한다는 것은 매출실적을 떠나 납품 사실 자체가 자기 제품에 대한 공신력을 대변해주는 일이다.
따라서 출혈을 해서라도 백화점에 물품을 넣으려 한다. 몇몇 백화점들은 이 점을 악용,납품업체의 등을 친다. 정부 물품구매의 「큰손」인 조달청도 예외는 아니다. 혹시라도 조달청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는 끝장이다. 불경기일수록 어떤 수를 써서든지 확실한 「줄」을 확보해둬야 한다. 돈봉투와 향응으로 구워 삶는 수 밖에 없다. 「부패의 먹이사슬」은 중소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업계에 확산되어 있다. 대기업의 구매담당 부서는 납품비리의 온상으로 통한다. 최고의 요직이자 돈방석으로 인식되어 있다.
중소기업의 고통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창업자금이나 기업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의 뒷돈(커미션) 거래는 거의 철칙화된 관행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창업 지원기금을 창업 투자회사에서 빌릴 때 주는 커미션 합계가 평균 5∼6% 수준이라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은행 대출시의 커미션도 평균 3%나 된다. 여기에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증서를 뗄 때의 커미션이나 감정원에서 담보가액을 산정할 때의 커미션 등을 합치면 부담은 훨씬 더 늘어난다. 최근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로는 은행대출시의 커미션이 최고 1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충북지역의 한 농공단지에 중소기업을 창업한 L씨는 『1억원의 창업 지원기금을 지원받기 위해 창투사의 사장과 실무자에게 모두 5백만원(5%)의 커미션을 건네줬다』며 『이렇게 해서라도 창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 무척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일선 관공서에 돌리는 봉투는 이미 고정비용 성격으로 굳어져 버렸다. 새마을 성금 등 각종 기부금 성격의 공개적인 준조세는 사실 별 부담이 안된다. 생색이라도 낼 수 있고 나중에 영수증 처리가 가능해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흔적없이 나가는 생돈이다.
경찰서 파출소 시청 구청 동사무소 군청 면사무소 소방서 세무서 세관 노동관서 환경처 등 인사해야 할 데가 부지기수다. 또 시설확장이라도 할라치면 행정관서로부터 보통 20∼30개의 도장을 받아야 하고 주요 고비에서는 「특제기름」을 쳐주어야 서류가 잘 돌아간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민관간의 비리도 문제지만 기업과 기업간의 거래과정서 일어나는 비리가 더 큰 고질이 되어 버렸다』며 『이런 비용이 모두 원가에 얹어지기 때문에 기업부패는 결국 국제경쟁력을 옭아매는 족쇄』라고 지적했다. 이 임원은 『이처럼 구멍이 펑펑 뚫린 상태에서 정부가 제 아무리 강력한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놔봤자 별무효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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