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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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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10)

입력
1993.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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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없는 심판/미 「공직윤리법」/10불 뇌물에 징역 15년/부정유형 설정… 관련자는 공직 박탈/공무용 시설·장비등 사용땐 처벌/공직자 상하간 「1원 선물」도 불용【워싱턴=정일화특파원】 미국에서도 선거철이 되면 부정부패 문제가 거의 반드시 선거쟁점의 하나로 등장한다.

지난 1988년 대통령선거에 조지 부시 후보는 『부정부패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92년 선거에서도 클린턴은 공직자윤리를 강화해 공무원은 퇴직후 2년간 대정부 로비활동을 못하게 되어있는 것을 5년으로 기한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를 실천할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그의 정권인수팀 멤버들로부터 「향후 5년간 대정부 로비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미리 받았다.

부시는 당선후 공무원의 부정부패 상황을 검토한후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관으로 「연방윤리법 개혁을 위한 대통령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발족 1년만인 89년 5월 「명예롭게 봉직하기 위한 연방윤리법 개혁을 위한 대통령위원회 보고서」를 내고 이 보고서에 따라 연방윤리청이 설치됐다.

92년 총선직전 의회의 부도수표 사건이 터져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우이낭 스티븐 솔라즈를 포함한 1백여명의 상하의원들이 결국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공직자 부정부패사건에 휘말리면 가차없이 심판이 내려지게 마련이고 역대 정부는 이런 잘못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왔음을 알 수 있다. 연방정부 윤리청 부청장 다니엘 캠프벨(56)씨는 이런 부정부패 통제노력에 대해 민주주의는 부정부패 위에서는 자라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주정부가 있는한 부정부패의 통제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워터 케이트 사건때 특별검사의 일원으로 CIA 고위인사들을 사정없이 기소했던 명검사 출신인 캠프벨씨는 첫째 민주주의는 부정부패가 있으면 바로 설 수 있다는 것과 둘째 부정부패는 올바른 공무원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척결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연방윤리청의 부청장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방윤리청(Federal Office of Government Ethics)은 4여명의 법관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 일반자문청(Office of General Council)과 각 부처의 윤리담당관 인사국 감사국 등 4개 기관과 긴밀한 연계를 갖고 공무원의 윤리문제를 주로 다룬다.

캠프벨씨는 윤리관계 담당 공무원이 업무를 수행하는 법률 근거를 알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5권의 서류사본을 갖고 나왔다. 일반자문청 법률규정중 공무원 뇌물법,존슨 대통령의 공무원 윤리강령령,부시 대통령의 공무원 윤리강령령,1978년의 정부 공무원 윤리법,그리고 1989년의 공무원윤리법중 개정부문이었다. 모두 한해 2백페이지가 넘는 법률들이었다. 2백페이지가 넘는 이 법률·명령들 속에는 공무원이 겪을 수 있는 부정부패의 가능한 패턴은 거의 망라됐을 정도로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우선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선물편을 보면 「그 공무원이 수행하는 직무와 관련된 당사자에게 직무와 관련돼 선물이나 뇌물을 요구하거나 받는 경우는 받은 금액의 3배까지 배상을 하며 15년 이하의 징역과 공직은 박탈 당한다」고 규정돼 있다.

직무와 관련돼 상대방에게 어떤 편의나 이익을 주겠다고 제의한다든지 반사적으로 이미 부여된 이익을 이유로 어떤 금품을 받으면 그것은 곧 뇌물이 된다. 시민이 교통법규를 위반해 딱지를 떼이는 대신 「점심값」을 주었다고 할때 그 액수의 다소에 관계없이 공무원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끝내게 돼있다.

직무를 통한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관련되지 않은 경우 공무원은 선물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관련규정은 몹시 까다롭다. 우선 한 당사자로부터 선물의 값어치가 25달러(2만원)를 넘어서는 안되고 1년에 모두 1백달러어치 이상을 받으면 안된다. 점심이나 저녁을 대접받는 경우에도 조건과 값을 세밀히 규정해 놓고 있다. 즉 「보잘 것 없는 값」(Nominal price)이어야 하며 여러사람이 불특정다수로 참석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이곳 저곳에 명시된 예외규정이 있을 때만 허용된다. 기념패 기념물 등의 경우는 제작비가 이보다 약간 더 드는 경우까지는 허용된다.

그러나 귀금속으로 된 기념패를 받아서는 안된다. 상관은 직무상의 부하에게서 「1원짜리」의 선물도 받지 못한다. 공무원은 대통령을 비롯해 누구나 전재산을 세밀한 부록과 함께 등록하는데 이에 따른 세밀한 절차 등이 2백여페이지의 이곳 저곳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대통령·외교관·특정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의 종류와 받은 선물의 보고 및 처리방법 등은 예외규정으로 각 부처의 특례규정에 기록돼 있다.

정부의 시설·장비 등을 사용으로 써서도 안된다. 이 규정에는 공무용 자동차는 어떤 경우에도 공무집행자 이외의 사람을 태울 수 없다는 것. 공무용 편지봉투를 개인용도로 사용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2백페이지가 넘는 이 많은 규정들은 사실 공무원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윤리관계담당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지분을 주기위한 규정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이 일과후에 사회봉사사업을 할 경우,경찰관이 일과후 사설경비 부업을 할 경우 등에도 윤리담당 공무원들은 규정을 들춰가며 해당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자문을 해주게 된다.

미국에도 물론 어떤 법을 어겼을 때 또는 정부이권을 따기 위해 법망을 교묘히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이런 사람들이 탈법을 해도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도 있고 범법행위에 비해 가벼운 판결을 받는 경우도 많다. 「좋은 변호사만 사면 된다」는 논리가 더러는 통한다.

그러나 그것은 법망을 빠질 구멍을 열심히 연구하는 변호사를 통해서 가능한 이야기이지 공무원과의 직접적인 뇌물거래를 통해 법망을 피할 수 없으며 이로써 이권을 얻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경찰국·소방국·박물관 등에서 모금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돈이 필요하니 헌금을 하라는 통지를 편지 전화 또는 직접 사람이 방문해 받기도 하고 또 그런 경우 상당수의 주민들은 약간액의 헌금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엄격한 법률의 테두리안에서 이뤄지며 절대로 공무를 악용해 헌금을 받지는 않는다. 법이 실생활에 근거해 만들어지고 있고 또 법을 지키는 것이 오랜 전통으로 여겨져온 서구사회 법질서의 단면들인 것이다.

법운용을 통치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동양사회의 입장에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선 한국사회에서는 우리에게 맞는 「명예롭게 봉직하기 위한 공무원법」 제정이 시급한 것 같다.<워싱턴=정일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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