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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잃는 것은…」/김창렬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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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잃는 것은…」/김창렬칼럼(토요세평)

입력
1993.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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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신문사 근처 삼계탕집에서 있은 취중정담의 한 토막이다. 이 정담아닌 정담의 꼬투리는 그 집 벽면에 걸린 다음 글귀였다.『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저기 저 글귀를 보고 생각나는 사람 없나』

『누구?』

『거 왜,대통령선거를 끝내고,일본 벳푸(별부) 온천에서,온탕·냉탕하고 엊그제 돌아온 사람­』

『온탕·냉탕?』

『그가 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나는 동지섣달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더운 물에 목욕을 하고 나서는 반드시 찬물에 씻는다­고 했으니…』

『하지만 하필 왜 그 사람이지?』

『저 글귀를 읽어 보라구.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저번 선거비용 얘긴가?』

『선거가 끝난뒤,그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선거비용 지출액이 2백20억원이야. 당선자가 보고한 2백84억원 보다는 64억이 적고,차점자의 2백7억보다는 13억원이 많지만,2∼3조원은 되리라는 그의 자산에 비추어서는 그야말로 「조금」이지』

『하지만 선거비용이 그 뿐인가』

『물론 국회의원 선거에도 돈을 썼고,당을 꾸리는데도 돈이 들었겠지. 그래서 그가 쓴 정치자금이 이번 선거비용의 10배쯤 된다고 해도 자산총액의 겨우 10%­. 현대에 돌려 쓴 비자금 몇백억도 1주일안에 갚을 수가 있다니까­』

『당운영기금 2천억원은 어떡하구?』

『그거야,없었던 일로 하자구』

『그게 문제야. 어떻게 공인의 말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내가 공신했던 말을 하루 아침에 그건 실수요­하면 그만인가?』

『그래서,저기 저 글귀에 이르기를,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하긴 그래. 이번 선거만해도,선거에 지고 나서 더 「많이」 얻은 사람이 있고,반면에 선거에 지고 나서 더 「많이」 잃은 사람도 있는 것 같애』

『꼭 더 「많이」 잃었다고 완료형으로 말할 것은 없겠으나,선거뒤 어떤 사람의 행태를 보아서는 그의 「명예」가 간두에 걸렸고,그래서 더 「많이」 잃을 위험이 박두했다고 할 수는 있겠지』

『그 위험신호가,그를 대통령으로 앞장서서 밀던 핵심 당직자들의 반발 아니겠나』

『그거야 컵속의 태풍이지. 그 당은 본디가 그를 대통령 만들자고 해서 만든 당이니까』

『그런데도 그가,당의 진로는 과거나 현재나 똑같다고 하는 뜻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시련은 있어도…」에서 찾아야지. 그 책 종장의 제목이 「아직도 할 일이 태산과 같다」거든. 그 종장에서 그는 말하기를,「나는 건강한 육체로 건강한 정신만 가지면,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소원하는대로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단 말이야』

『그러니,저기 저 글귀의 막장을 보라구.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그는 아직 건강하니까,아직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판국에,또 당내 형편이 저 꼴인데,그가 정치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얼까? 그보다 그 자신이 정치에서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이번 벳푸에서 돌아와서 한말을 뜯어봐도,정치를 계속한다는 것 뿐이지,정치적인 비전은 하나도 밝힌 것이 없던데­』

『비전이 없으면,정치에서 손을 떼는 것이 옳다는 뜻인가?』

『그렇지』

『그럼 낚시나 하라?』

『아니지. 그의 말대로,그 앞에는 「아직도 할 일이 태산과 같다」. 그러나 그가 할 일이 정치밖에 없을까?』

『옳은 말들이지만,나는 좀다른 생각을 하네. 저기 저 글귀의 「돈」과 「명예」와 「건강」말인데,그것을 「조금」 「많이」 「모두」로 평가한 것이 문제 같애. 저기 쓰인대로,「돈」은 「조금」이야. 「건강」이 「모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그것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지. 그러나 「명예」는 달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야. 당자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 기억속에,좀 거창하게 말하면,역사에 남지』

『그러니까 「명예」가 「모두」다?』

『그렇지. 이런 말을 하는 것은,동시대인이 우러르던 거인의 「명예」가 더렵혀지는 것은,그만의 비극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야. 그의 「명예」가 더럽혀지면,우리 현대사는 거인 한 사람을 잃게 된다 이거지. 그래서 나는 그가,「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읽고 감탄했던 그 많은 사람들,그리고 그에게 표를 주었던 3백만 유권자가 그렸던 이미지 그대로 남았으면 해』

『그러자면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하나?』

『꼭 그래야 한다고 단언은 않겠지만,그가 지금 모양대로 정치를 계속 한다면,그의 「명예」,그의 이미지가 더욱 다운될 것만은 틀림 없겠지』

『내가 보기엔 그 문제의 해답 역시 「시련은 있어도…」에 들어 있는 것 같애. 그는 재작년 10월에 나온 이 책의 후기를 이렇게 맺고 있거든. 「나는 이 나라를 영광스럽게,우리 국민을 행복스럽게 만들기 위한 일에 온 정열을 기울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나의 여생을 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한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그의 경륜과 선택에 달린 것이니,지켜볼 수 밖에…』

『그리고 「시련은 있어도…」 본문의 맨 마지막 결구도 기억해두는 것이 좋을거야. 「언제인가(나는) 고향의 소년시절로 돌아가,서산농장에서 트랙터를 몰 것이다」. 어때 사뭇 시적이지 않은가』<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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