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시험도 교육”/중3때 대학·기술교 진학여부 평가/제도 엄정… 부정개입 틈없어/돈수수땐 교사·학부모 함께 처벌/각 기관 수시감사… 부패여지 없애【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동남아에서 선진국을 자처하는 싱가포르 발전의 밑거름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교육이다. 다민족 사회에서 인구의 76%를 차지하는 중국인과 인도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수준높은 교육은 평등과 차별이라는 서로 배치되는 가치와 제도가 조화되고 부정부패가 전혀 개입될 틈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싱가포르에는 부정부패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8학군」병도 없다. 싱가포르 학생들은 자기가 다니고 싶은 학교는 초·중·고교를 불문하고 거리와 관계없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입학하려면 빈자리가 있어야 하고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싱가포르에도 교육시설과 내용이 우수한 명문이 있고 이들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한 학부모의 경쟁도 대단하다. 명문교로 전학할 경우 학교에 따라 수백만원의 기부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도 자리가 없어 줄을 선다. 얼마전 이 기부금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해친다고 해서 사회문제가 되긴 했으나 「부정입학」이라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한 교민의 경험담이다. 국민학교 자녀를 공립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모두 자리가 없다고 거절이다. 그러나 거절에도 순서가 있다. 대기자명단 맨끝줄에 등록했다. 자리가 나면 연락해준다는 것이다. 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아이를 빈교실로 데려가 시험지를 주고 나가버린다. 학부모가 따라 들어갔지만 나가 있으란 말도 없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는 자꾸만 어머니를 쳐다보며 울상이다. 이 시험에서 평균 60점을 받지 못하면 입학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입시생과 부모만 덩그러니 남게된 교실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고백한다.
부모가 교무실로가 시험을 끝냈다고 말하자 교장선생님이 직접 교실로와 학부모가 보는 가운데 채점한다. 몇달 영어과외를 시키기는 했으나 아이의 영어실력으로는 점수가 좋을리 없다. 부모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생각에 맥이 풀렸다. 교장은 채점하면서 『영어도 모르는데 수학점수가 좋다』며 웃는다. 영어 36점,수학 52점이다. 교장은 『규정에 의하면 60점 이상이라야 하지만 나의 재량으로 합격시켜 주겠다. 교복을 사입고 학교에 나오라』고 말한뒤 교복과 교과서 사는 곳과 가격이 표시된 쪽지를 준다.
부모는 『이 세상에 태어나 이처럼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교복 한벌값은 8천원. 싼편이다. 교복지정 판매처를 찾아가보니 아파트단지의 한 가정집이다. 교과서를 사라는 곳은 어느 골목의 조그만 문방구.
왜 이런 곳을 지정했을까. 업자와 「뒷거래」가 있을 소지도 있을텐데…. 한달후에는 아이의 손에 학교도서관을 확충하는데 돈을 기부해달라는 통지문이 쥐어져왔다.
기자는 「버덕 사우드」라는 이 국민학교의 탄 교장선생님(48)을 찾았다. 첫 질문은 왜 규정을 어기고 한국어린이의 입학을 허용했느냐였다. 탄 교장은 『규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시험도 교육이다. 나는 학부모가 아이에게 한문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이점을 높이 평가한다. 나는 교육자로서 이 학생이 지금은 성적이 나쁠지 모르지만 6개월 이후에는 우수한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규정이 엄격해도 나의 판단이 잘못이 아니라면 교육자로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학생의 좋은 성적표를 내보인다. 교복과 교과서 지정판매,그리고 기부금 등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있다는데 인터뷰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한국에 교육부조리가 많아 문제지요』라며 웃는다. 교장의 임무중의 하나가 가장 저렴한 가격에 가장 좋은 교육재료를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방학동안 여러업자를 만나 가격과 품질을 검토,기성회가 협의한 끝에 업자를 선발했다는 것이다.
탄 교장은 『아직 학부모나 감사당국으로부터 불만이나 지적을 받지않은 것으로 보아 나의 판단에 문제가 없던 것 같다』고 기뻐한다.
인터뷰 도중 부교감이 각종 자료를 달라고 여러차례 요구해 대화가 끊긴다. 교육부에서 감사가 나왔다는 것이다. 교육부 뿐만 아니라 총리실 부정부패행위 방지위원회 등 각 기관의 감사가 수시로 불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개의치 않는다.
탄 교장은 『잘못이 있는지는 몰라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태연하다.
싱가포르 학교에서는 「돈봉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교육계에서는 부정부패사건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없다. 선생님이 단돈 10원이라도 학부모로부터 받으면 선생님은 파면이상의 벌을 받고 학부모도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아예 「돈봉투」를 주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탄 교장은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선물하는 스승의 날이 가장 골치아픈 날이다. 탄 교장은 스승의 날 바로 전날 조회에서 학생들에게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여러방법을 제시한다. 편지나 카드,1달러(5백원) 내외의 돈으로 선물할 수 있는 품목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어린학생들이라 부모와 상의도 없이 저금통을 털어 수백달러짜리 고가품이나 저금통 자체를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경우 학생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학부모를 몰래 불러 되돌려준다. 모든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받은 물품은 물론 1달러짜리 현금이라도 즉각 교장에게 사실을 보고하고 처리를 협의한다.
학부모가 식사에 초대하는 경우에도 교장과 협의해 참석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학부모의 의도다. 부정한 의도를 가졌다고 판단될 경우는 거절이다. 애매한 경우 상부에 보고해 판단을 구하기까지 한다.
학부모로부터 기부금을 받지만 교육부에 기부금 모금계획과 실적,사용내역을 철저히 보고,승인받은뒤 엄격한 감사를 받기 때문에 개입할 소지가 거의 없다. 기부금 액수가 학생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심만 가도 기부금제도는 존재하기 어렵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보내오는 소액의 기부금일지라도 정성껏 받는다.
학기말 학부모 상담때는 학교를 찾는 학부모들에게 주스를 대접한다. 탄 교장은 선생님의 행동지표가 되는 것이라며 「교육자윤리요강」을 펼쳐보인다. 한 항목에는 『부정한 소지가 있는 행동은 일절하지 않는다』라고 돼있다.
영국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중학 3학년때 시험을 치러 성적에 따라 대학갈 학생,기술학교로 갈 학생 등으로 구분한다. 한 학생의 인생진로를 가르는 일이라 이 시험은 엄정하게 치러진다. 교육열이 높은 싱가포르의 학부모들은 애간장을 태우지만 이 나라의 공직사회가 너무나 깨끗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시험부정이란 단어조차 없다.
성적이 나쁜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부정부패의 척결에 교육계도 성역이 될 수 없다. 교육자가 단돈 10원이라도 부정한 돈을 받으면 부정부패방지법에 따라 가차없이 처벌받는다. 뇌물을 준 학부모와 함께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그뿐이 아니다. 파면에다 연금 등 각종 혜택의 철회,뇌물의 철저한 회수,퇴직후 취업불가능 처벌은 가혹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공직자의 부정행위는 「자살행위」로 표현된다.
이러한 교육사회의 청렴결백은 동남아에서의 제일 가는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교육의 질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녀교육 때문에 돈봉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 교민 학부모는 『돈봉투 걱정에서 해방된 기쁨이 얼마나 큰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돌아갈 한국에서의 아이들 교육걱정이 태산이다.
김영근양(16)은 「한인회보」에 쓴 수필에서 『「공부만이 제일이 아니다」라는 싱가포르 학교가 좋다. 테니스클럽에 참가하고 있는데 공부에도 성적표가 있듯이 특기클럽에도 점수가 있다』며 한국에서의 교육현실을 비판했다.
싱가포르란 거울에 비쳐본 우리의 교육현실은 너무나 이그러져 있다. 이제 우리도 돈봉투가 필요없고 전인교육이 실시되는 진정한 배움의 터를 만들기 위한 일대 개혁을 단행할 때다.<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