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 폭락등 환시혼란 “긴급 처방”/독 경제악화땐 위기 또 올듯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4일 갑작스런 금리인하를 단행함에 따라 붕괴위기론까지 나돌던 유럽환율체계(ERM)는 일단 중대고비를 넘겼다. 더욱이 유럽경제의 원동력인 독일의 금리인하는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불경기를 타개하는데도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이날의 조치로 유럽공동체(EC) 경제통화통합의 핵인 ERM이 확실하게 안정을 되찾았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라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고금리정책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던 독일이 예상밖으로 태도를 바꾼 것은 지난주부터 재현된 유럽외환시장 혼란상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영국 파운드화의 ERM 탈퇴이후 유럽외환시장은 몇차례 혼란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벌어진 유럽 주요통화의 하락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최근의 혼란상은 지난주 영국의 금리인하에서 비롯됐다. 파운드 폭락이후의 경제전략을 환율유지와 낮은 인플레에서 성장과 경기부양으로 고쳐잡은 영국은 지난주 기본금리를 6%로 1% 포인트 낮췄다. 이에따라 파운드화는 달러와 마르크화에 대해 사상 최저기록을 연일 경신했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아일랜드 푼트화는 외화투기꾼들의 공세를 견디지 못해 지난 31일 10% 평가절하하기에 이르렀다. 외환시장의 큰손들은 푼트화가 무너지자 다음 목표를 덴마크 크로네화로 보고 집중적인 공략에 나섰다. 크로네는 이번주들어 외환시장에서 ERM 하한선을 맴도는 등 고전을 면치못해 평가절하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 나돌았다.
지난해 9월이후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EC내 약세통화들은 외환시장의 압력에 굴복,차례차례 평가절하를 감수해야했다. 그러나 EC의 핵심통화에 속하는 덴마크 크로네화의 평가절하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인식됐다. 크로네가 무너질 경우 다음 타깃은 독일 마르크와 더불어 ERM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 프랑화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면 EC 경제통화 통합을 위해 필수적인 ERM의 붕괴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독일의 금리인하는 ERM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통해 EC 통합자체가 벽에 부딪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대응이었다.
이날 분데스방크가 취한 금리인하의 폭은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외환시장의 안정을 되찾게 하기에 충분했다. 금리인하설이 외환시장에 나돌자마자 크로네와 프랑화는 상오까지 계속됐던 하락세에서 반전됐다. 비록 인하폭은 작지만 통독후의 인플레와 재정적자 등 심각한 국내 사정 때문에 고금리 정책을 고수해온 독일 중앙은행이 ERM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EC내 약세통화들의 잇단 평가절하이후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 베네룩스 3국 등 경제가 탄탄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소통합을 추진할 것이란 그간의 추측을 일단 불식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하지만 이날의 조치가 지난해부터 계속돼온 ERM의 위기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독일의 인플레가 1월중 4.4%에 이르는 등 올해 목표치인 2% 달성은 무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 경제사정이 악화될 경우 분데스방크가 다시 고금리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상존한다. 게다가 프랑스도 실세금리가 은행금리를 웃돌고 실업이 계속 늘어나는 등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이날의 금리인하는 일시적으로 파국을 면하게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머지않아 ERM의 위기가 재현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시기는 3월의 프랑스 선거전후가 될 것이며 이미 기진맥진한 ERM이 이 고비를 넘기고 EC 경제통합을 향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는 낙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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