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양심 “「검은돈」에 오염”/촌지·참고서 채택료등 “공공연”/초·중·고 교육여건부터 개혁을「돈이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배금주의와 「내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라면 범죄도 불사하겠다」는 입시만능주의는 우리 교육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황폐화시키고 있다.
갈수록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대학입시 부정사건은 「검은돈」에 오염된 한국 교육의 추악한 실상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번 입시부정 사건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거래액수는 모두 9억8천만원에 달한다. 이 돈이 바로 현직 교사와 교감,대학 교무처장 등 교육자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우리 교육을 벼랑끝으로 몰고 간 주범이다.
그러나 밝혀진 돈의 액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교육계 곳곳에는 학부모의 맹목적인 대학진학 욕구가 파놓은 「돈고랑」을 통해 검은 돈이 무수히 스며들고 있다.
이른바 촌지는 교육계의 공인된 돈줄. 지역과 계층,학년별로 천차만별인 학부모 촌지의 액수는 대개 국민학교 3만∼5만원,중고교 5만∼10만원선이며 「교육특구」라는 서울 강남지역은 최하 10만원을 건네야 학부모 체면이 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다 비밀스런 돈거래로는 교과서 채택료와 대입 모의고사 응시료가 있다.
업계에 의하면 검인정교과서 시장규모는 3천억원대에 이른다. 교과서 채택을 둘러싸고 은밀히 주고받는 정확한 액수는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지난 88년 탈세혐의로 구속됐던 J출판사 대표 권모씨가 83년부터 88년 4월까지 교과서 채택료로 지불한 돈이 6억5천만원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전국서적 상조연합회는 91년 『각종 참고서 채택료 규모가 1천억원에 달한다』며 채택료를 챙긴 교사들을 서울시교육청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중고교가 특정출판사 참고서를 부교재로 채택하는 대가로 해당 참고서 정가의 「20∼30%×학생수」의 뒷돈을 받아 25∼30%를 주임교사나 교감에게 상납한뒤 나머지는 동료교사와 나누거나 회식비용으로 쓴다』고 폭로했다.
3개 대규모 사설 입시학원이 독점하고 있는 대입 모의고사 시장규모는 2백억원대에 이르며 이중 20% 가량되는 30억∼40억원이 장학금이나 사례비 명목으로 학교측에 건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격과 지식을 연마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스승에게 강화받는 전인교육을 실천해야 할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학부모 촌지와 채택료 수수는 학교를 더이상 교육의 장소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뒷돈 거래는 그러나 교육계의 지하경제의 매우 작은 부분만을 차지한다. 학교보다는 입시학원과 비밀과외를 더 신뢰하는 그릇된 풍조에 편승해 「입시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골목마다 탈법 입시학원이 들어서 있고 변태 고액과외 시장규모는 파악하기 조차 힘들 정도이다.
이번 입시부정에 가담한 현직 교사들도 따지고 보면 교육계 지하경제의 돈 그물망에 얽혀들어 교육자의 양심을 팔아먹은 경우였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성적이나 적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대학에 진학시키려 한다. 이같은 과잉 교육열을 노려 입시부정과 같은 범죄행위가 저질러진다.
대기업 중견사원으로 강남지역에 거주하는 K씨(45)는 고2 아들과 중3 딸을 두고 있다. 월수입 2백만원인 K씨는 두자녀의 과외비로 월 1백6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고2 아들의 경우 영어를 못해 1백만원을 주고 A급 강사를 초빙,과외를 시키고 수학은 30만원짜리 그룹과외를 시키고 있다. 중3 딸은 속셈학원 간판을 단 그룹지도 학원에 보내는데 영·수 과목당 15만원씩 30만원을 내고 있다. K씨 부인은 학기초마다 두자녀의 담임에게 10만원씩의 촌지를 건네준다.
건국후 역대정권은 끊임없는 상급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교육대중화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이제 『돈 없으면 대학에 갈 수 없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압도하는 우리나라 교육재정구조는 이번 입시부정이 교육부 등 교육당국의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근절될 수 없는 문제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90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9조4천2백71억원으로 8조6천9백72억원에 불과한 공교육비를 7천2백99억원이나 초과하고 있다.
1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사교육비가 교육계의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 현직교사와 재정난에 허덕이는 학교재단의 탈선을 부추기는 한 입시부정의 근본적인 치유는 어렵다.
입시위주의 파행적인 교육과 그로인한 각종 입시부정을 막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된 초중고를 살리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계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는 사교육비를 공교육부문으로 끌어들여 학교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일선 교육자의 사명감과 사기를 진작시키는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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