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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어린이상」/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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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어린이상」/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3.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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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시대에 국민학교를 다녀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교사의 중앙 정면에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등에는 땔나무를 잔뜩 얹은 지게를 지고 밭에는 짚신을 낀채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소년의 상이었다. 학생들은 등하교때 이앞을 지나가면서 구뻑 절을 했다. 어떤 선생님의 훈계보다도 늘 입다문 이 동상의 침묵앞에서 더 정숙해졌다. 동상은 선생님중의 선생님이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니노미야 킨지로(이궁금차랑).학생들은 니노미야 킨지로가 누군지를 다 알고 있었다.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이다. 수신이라는 도덕과목 교과서에서 킨지로의 소년시절을 배웠다. 그리고 당시 창가라고 부르던 음악시간에 노래로 가르쳤다. <나무하고 새끼 꼬아 짚신을 만들고… 본받을 니노미야 킨지로> 라는 노래다.

니노미야 킨지로는 뒷날 일본의 농정가로서 농민 성인으로까지 추앙된 니노미야 손토쿠(이궁존덕)의 아명이다. 1787년생인 그는 소년 때 큰아버지집에 맡겨졌고 이 때의 경험으로 농민의 근면과 검약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개량책을 발안하여 피폐한 농촌을 부흥시켰다.

소년 킨지로는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논어」 「대학」 등을 독학으로 떼었다. 책을 잃고 싶어도 등잔기름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자 황무지에 채종을 심어 등유를 자급하며 공부했다. 그의 학식은 그의 사후제자가 기록한 어록 「니노미야옹 야화」(이궁옹야화)가 일본의 명저로 꼽힐 만큼 떨쳐졌다.

이 독학의 소년이 일본의 교과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00년,독서외에도 효행과 근면의 모범으로서였다. 창가는 1911년에 생겼다. 킨지로의 동상이 각 국민학교에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쇼와(조화) 연대에 들어서다. 전쟁중에는 금속류의 공출로 많은 동상이 석상으로 바뀌었다.

하필이면 일본의 예나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일본인은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책의 해」다. 책을 펼쳐드는 수고를 독려하기 위한 여러가지 운동과 행사가 한해동안 벌어진다. 어른들에게는 독서가 노역으로 인식되고 어린이들에게는 책읽기가 체벌로 여겨지는 부끄러운 세태를 분개하자고 「책의 해」는 있다.

일련의 「책의 해」 사업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의 하나가 「책읽는 어린이상」 공모다. 50년 전통의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인 계몽사가 출판사업으로 얻은 이윤을 독서운동에 환원한다는 뜻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의 조형물을 현상모집하고 있다. 문화부장관상이 걸린 당선작은 같은 모형을 연차적으로 전국의 각 국민학교에 세워줄 계획이다.

모든 버릇이 그렇듯이 책을 가까이 하는 버릇 또한 어릴 때부터 길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는 책을 읽을 여력이 없었던 시대가 길렀다. 광복후 동란을 거치고 잿더미에서 일어서는 동안 책 자체가 풍부하지도 않았고 책을 배불리 살 만큼 넉넉한 경제사정도 아니었다. 그런 어린시절이었으므로 독서습관이 착근하기가 어려웠다. 이들을 향해 지금 「책의 해」가 나팔을 불어대지만 그 소리가 괴롭다.

사르트르의 자전인 「말」에는 어린시절의 독서체험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나는 책에 둘러싸여서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죽을 때도 필경 그러리라」

사르트르는 2세 때 아버지를 잃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의 서재에는 책이 빽빽했다. 그는 엑토르 말로의 「집없는 아이」 한권을 다 읽는 사이 글을 깨쳤다. 그후로 닥치는대로 독서에 열중하게 된다.

「내게는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짙은 기억도 즐거웠던 탈선도 없다. 나는 땅을 파본 일도 새집을 쑤셔본 일도 없다. 오직 책들만이 나의 새들이며 새집이며 가축이며 외양간이며 나의 시골이었다」

어린 그에게 독서는 이렇게 자연속의 놀이였고 스스로 말한대로 이미 그때 책속에서 자신의 종교를 발견하고 있었다. 이런 유시부터의 독서습관이 없었더라면 세계적인 대사상가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인의 독서열은 니노미야 킨지로의 동상 영향이 크다할 수 있다. 그 동상의 교육이 어릴 때부터 책읽는 버릇을 가르쳤다. 그 어린이가 자라서 집안에 책이 쌓이고 다시 태어나는 어린이는 사르트르처럼 그 책속에 묻혀 지내게 마련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모범을 잃은 세대다. 면학의 영웅을 동상으로 만난 적도 없고 책읽는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 책의 유산이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집안에 책이 쌓인 것을 구경한 적이 없다. 또 하나의 「로스트 제네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다. 이제라도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각 국민학교에 「책읽는 어린이상」이 세워진다면,그것이 가능한한 우리의 역사속에서 찾아낸 인물의 어린시절상이라면,우리 어린이들도 책의 우상을 갖게 된다. 우리는 묘목을 심는 마음으로 독서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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