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의 태두였던 육당 최남선은 개조이래 5천여년에 걸친 우리역사상 이름을 떨쳤던 많은 뛰어난 인물들 중에서 옥을 고르듯 엄선하여 조각을 한적이 있다.육당은 먼저 국무총리에는 1천8백여년전 고구려 9대왕인 고국천왕때 명재상이던 을파소를 꼽았다. 삼국사기 16권에 의하면 을파소는 북녘 압록곡의 좌역촌에서 밭을 갈며 학문을 닦던 은사였다. 내란으로 혼란과 도탄에 빠진 나라를 수습하기위해 왕이 천하의 현재를 구할 무렵 거물정치인인 안태의 추천으로 신가(국상)에 발탁됐다. 그야말로 초야의 한미처사에서 일조에 최고위직에 오른 것인데 군신들이 시기하며 「촌부」라고 헐뜯자 왕은 『국상의 명을 거역할 경우 족멸하겠다』고 선언,국정의 전권을 맡겼다. 크게 감격한 을파소는 몸을 던져 오직 구국지성으로 한점의 오사가 없이 나라살림을 이끌었다. 그는 백성 구휼과 안민만이 부국의 요체로보고 사상처음으로 춘궁기인 3월∼7월까지 관곡을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추수때 환납케하는 진대법을 실시,생활을 안정시키는 한편 정교와 상벌을 엄격히하여 대평성대를 이룩했다. 단재 신채호도 역저 「조선상고사」에서 을파소를 고구려 9백년 역사 제1의 국상이라고 추겼다.
육당은 이밖에 외무장관에는 고려때 내침한 거란(계단)군을 담판과 설득으로 퇴거시킨 서희를,내무에는 단군조때 산천을 다스리고 백성을 안거케한 팽오를,법무에는 기자조때 「팔조의 금법」을 실시,사회기강을 세운 왕수긍을 기용했다. 또 재무와 농상공장관에는 부여와 백제의 명신인 명위고와 흘우를,교육에는 이두를 만든 설총을 배정했고 명장인 을지문덕과 이순신은 육군과 해군장관으로,강감찬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으며 청와대 경호실장(시종무관장)에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아들로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김인문을 꼽았다.
육당의 이같은 조각은 경술국치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지 8년이 지난 1918년 자신이 주관하던 「청춘」지(6월호)에 실린 것으로 「우리도 나라가 있었다면… 」하는 바람에서 일본국제에 맞춰본 것이었다.
새 정부 출범을 꼭 25일 앞두고 국민들의 관심은 김영삼 정부가 펼칠 새 한국 건설을 위한 개혁청사진과 요직인선에 모아지고 있다.
총리 등의 인선의 질과 수준은 김 차기 대통령의 인사능력을 선보이는 것이고 또 개혁과업을 포함한 새 정부의 성패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앞으로 김 차기 대통령이 인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사심이 없고 확고한 소신을 갖고 권력에 눈치를 보지 않는 인물이어야 한다. 다음 개혁의지와 함께 결단력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깨끗한 몸가짐,즉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또 대통령과 친소나 인위적인 지역배려보다 능력과 경륜,참신성을 우선 배려하는게 긴요하다. 다섯째 균형감각과 국제적 시야를 갖추어야 하며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와함께 절묘한 처신과 유영으로 역대정권때마다 영화를 누려온 소위 해바라기족,권력지향적인 인물들은 철저히 배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인사를 국무총리에 발탁해도 그가 뚜렷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총리에게 국정운영의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헌법상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총괄하게 되어 있+에도 여전히 몸조심속에 대두역 등으로 로봇화할 경우 행정의 능률은 커녕 눈치보기만 성행할 것은 뻔하다. 대통령은 산과 들을 조망하고 감독하고 총리는 내각을 지휘·독려하여 산과 들을 개발,관리하는 방식이 되는게 정석이다.
또 하나는 총리나 장관 등을 임명하면 가급적 대통령의 임기까지,아니면 적어도 3년 이상 재임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역대정권의 총리 재임기간을 보면 씁쓸한 느낌이 든다. 박정희정부(1963년 12월∼79년 10월)는 최두선최규하총리까지 5명으로 평균 3년2개월씩 재임시킨 반면 전두환정부(80년 9월∼88년 2월)는 7년반 동안 남덕우김정열총리 등 7명을 기용,평균 1년1개월 재임케했고 6공도 5년 임기동안 이현재현승종총리까지 5명으로 1년씩 재임시킨 셈이된다.
물론 경질때마다 어려운 사정과 문제가 있다해도 1년동안,그것도 대두역 수준에서 무슨 일하나 제대로 소신있게 할 수 있겠는가.
과연 어떤 수준과 무게와 덕망을 지닌 인사를 국상으로 고를 것인가. 인사란 지난사이지만 천하의 현사·은사를 구한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판 「을파소내각」을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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