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에 자족할 것인가,변호사로 개업할 것인가.사법부에 몸담고 있는 법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이런 회의에 빠지곤 한다.
언제든지 현직에 있기 싫으면 법복을 벗어버리고 변호사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일종의 특혜를 누리는 법관들이 이런 고민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전통적인 관직 선호사상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의 현실에서 법관이라는 직업에 배어있는 명예는 판사들에게 쉽게 법복을 벗을 수 없게하는 최대의 덕목이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전부터 가속화한 법관들의 이직현상은 이 명예의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직의 권위에 대한 전통적,전근대적 존경과 신망이 감퇴하면서 관직에 대한 매력 상실현상이 법원에도 빠른 속도로 스며든 것이다.
2월말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법원가에 일고 있는 사표파문은 법관들의 가치관 충돌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특히 사법부 안팎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중견법관들이 경제적 사정을 주된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현직법관 상당수가 허탈감과 동감을 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중견법관은 『명예의식만으로 견뎌낼 수 없는 것이 오늘 사법부의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 소장판사는 『장래 대법관 후보로 꼽히는 서정우 고법 부장판사까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현직에 남아있어야 하는가에 회의가 생겼다』며 과도한 업무,사회적 지위에 비해 열악한 대우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 요인만으로 법관들의 이직사태를 진단할 수는 없다.
많은 법관들은 『그래도 남아있을 만하다』는 자긍심을 불어넣기에 역부족인 오늘의 사법부 체질이 이직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뿌리깊은 사법부의 보수성,아직도 요원한 사법권 독립문제 등이 유능한 법관들이 도중하차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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