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혼인이 지시하는 사람』이다.
로마법의 대답은 이렇게 간단명료하다. 요컨대 아내가 낳은 자식은 남편의 자식이란 뜻이다. 자명한 얘기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로마법의 전통을,우리 민족은 다음과 같이 번역해 놓고 있다.
처가 혼인중에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제844조 ①).
여기 「추정한다」는 그렇지 않을 수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증거가 있으면 뒤집을 수가 있다. 그러자면 「친생부인의 소」라는 재판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처럼 아버지란 본디가 좀 맹랑한 존재다. 생물학적 사실에 근거한 어머니만큼 확실한 존재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 생식의학의 첨단기술은 어머니의 존재마저 맹랑하게 만든다.
쉬운 예가 대리모다. 부부의 정자와 난자를 체외수정시켜 대리모가 출산한 경우,진짜 어머니는 누구일까.
문제는 그 대리모가 친족일 때에 더 복잡해진다.
작년 8월 42세인 미국 여인은 「손자」 쌍둥이를 분만해 화제가 됐다. 임신불능인 딸을 대신해 사위의 정자를 체외수정시킨 수정란을 이식해 출산한 것이다. 88년에는 나이들어 재혼한 어머니 대신 수정란 이식으로 「동생」을 출산한 경우도 있었다. 수천년을 두고 자명한 것으로만 생각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세대 등의 개념과 그에 따른 가치마저 흔들릴 판이다. 이 뒤끝에 오는 것은 무엇일까.
4년전 독일의 논픽션 작가 샬로 테케르너는 「1999년생」이란 소설을 썼다. 2016년의 독일을 무대로,17세의 입양소년이 친부모를 찾아 낸다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다. 진부하다면,진부한 줄거리지만,작품속의 상황과 결론은 퍽 충격적이다.
작품속의 독일은 핵전사고와 환경오염 등으로 불임증이 급증하고 있다. 대책은 인공생식기술의 개발뿐이다. 이에따라 제3세계에서는 대리모업이 국영산업으로 번창한다. 그러나 수요를 댈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입양소년 칼은 친부모를 찾아 나선다. 여러겹의 장벽을 뚫고 소년은 겨우 출생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는 체외수정아였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찾아낸 대리모는,1KG/AU라는 부호가 붙은 기계인공자궁. 칼은 그 기계가 1999년에 처음 출산한 인공자궁아 제1호였다.
놀란 칼은 「어머니」를 죽이겠노라고 외친다. 그래봐야 살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조하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책의 후기에서 작가는 인공자궁은 어디까지나 공상으로 그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반론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상식을 뛰어넘는 생명기술의 성과가 많았음을 지적하고,모든 생명기술의 발전을 마냥 좋아만 할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귀 기울일 것도 바로 이 반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제기해야 할 반문의 뉘앙스는 좀 다르다.
우리 형편에서 인공자궁의 출현을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 생명기술 수준은 아직 낮고,낡은 외국 기술을 도입하기에도 벅차다. 앞으로 생명기술 발전을 위한 투자는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기술 수준이 낮은 반면,그나마의 기술을 옳게 쓰고 바로 발전시킬 생명윤리 수준이 그 보다도 훨씬 낮다면 어찌될까. 이것이 공연한 걱정이 아님을,근래 유수한 대학병원이 빚은 정자은행 사건이 말해 준다.
사건의 진상은 아직 조사중이라지만,에이즈나 유전질환도 검사않는 인공수정이,우리나라 정자은행의 일반적인 관행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 이 사건은 우리 의학계에는 그런 부도덕을 자체 감시할 실효적인 윤리기구가 없으며,그런 미묘한 문제를 규제할 법제는 물론 정부차원의 규제기준조차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런 생명윤리의식의 부재는 사건 당사자인 그 의학교수 한 사람만이 아니라,의학계 전체,보건행정 전체,나라전체의 심각한 문제라고 해야 옳은 그렇잖아도 우리는 지금 생명에 관계된 많은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한해 1백만건이 넘는 낙태문제가 있다. 외국에서는 역대 대통령선거의 큰 이슈가 되는 이 문제를,우리는 아예 논의도 않고 넘긴다. 낙태금지의 형법규정마저 숫제 외면한다.
낙태의 성별검사는 분명한 불법인데도,태어나는 아기의 성비는 해마다 기울고 있다. 성별검사와 선별낙태가 지금도 성행한다는 얘기일텐데,이를 단속했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더 심각하기는 장기이식과 뇌사인정 문제다. 「용감한 의사」들이 뇌사자의 장기를 도려내는 「살인행위」로 국민감정과 국법을 시험하는데도,정부는 여론의 동향을 살핀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국민들 사이에 별 논의가 일지도 않는다. 장기매매의 장이 서도 모른체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생명에 대하여,너무나 무감각하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파생하는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것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모두의 일이다. 생명경시야 말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근본문제임이 여러모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생명은 정치의 제1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한국」이란 말을 다시 생각한다. 「신한국」의 첫 요목은 「생명이 존중되는 나라」이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이다. 근래 신문마다 대서특필되는 개혁방안중에 이 대목이 없음을,나는 몹시 서운하게 생각한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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