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제재싸고 미유엔 대립/갈리 총장등 “결의안 거부 응징 마땅”/미선 “이중기준” 여론에 찬반 딜레마【유엔=김수종특파원】 독자적인 목소리로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는 부트로스 갈리 총장이 안보리 결의를 묵살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제재해야 한다고 안보리에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갈리 총장의 이같은 권고는 국제분쟁을 대처하는 유엔이 2중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계속되는 상황이라서 유엔내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갈리 총장이 지적한 안보리 결의안은 지난 12월18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안 제799호. 이스라엘이 점령지에 거주하는 4백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레바논으로 추방하자 유엔안보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무조건 이들의 재입국을 허용해야 한다는 결의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았다. 갈리 사무총장은 특사를 보내 지난 1개월간 이스라엘정부,팔레스타인 대표,레바논 당국을 차례로 순방하며 협상을 벌이고 이스라엘이 추방자를 다시 받아들이도록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때마침 미국 등 다국적군이 이라크가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그다드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등 응징을 했기 때문에 똑같은 안보리 결의 불이행을 놓고 유엔이 이라크와 이스라엘을 차별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갈리 총장은 지난 25일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국제사회에서는 안보리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안보리 결의 799호를 이행토록 압력을 가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안보리 결의이행에 동등한 중요성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상황에서 총장이 안보리에 대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지 않는다면 총장의 의무를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리 총장의 표현은 상당히 외교적 수사가 동원됐으나 뜻은 미국 등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대한 압력이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유엔대표부는 때를 만났다는 듯이 26일 이스라엘 제재 결의안 초안을 만들어 안보리 이사국은 물론 각 회원국에 회람시켰다. 안보리에 제재결의를 유도하기 위한 운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스라엘은 갈리를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제여론의 불리를 직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미국이 편들어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라빈 총리는 26일 의회에서 『지금까지 미국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같은 정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갈리의 권고와 PLO의 이스라엘 제재초안을 놓고 유엔 회원국들은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엔의 권위확립을 위해 이스라엘이 결의안을 이행토록 강제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공감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15개 안보리 이사국중 제3세계 7개 국가들이 갈리 총장에게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유엔내의 시선은 이제 미국으로 쏠려있다. 이라크의 안보리 불이행을 앞장서서 제재한 미국이 이스라엘의 결의안 불이행을 수수방관할 것이냐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직면한 셈이다. 미국정부는 이스라엘 제재가 없을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안보리 거부권 행사를 원치 않는다는 애매한 태도를 일단 취하고 있다. 지난 2년반동안 미국은 안보리 거부권을 행사해본 적이 없다.
만약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 제재를 요구하는 안보리결의 초안을 상정하고 회원국의 지지를 확보할 경우 유엔과 미국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클린턴 정부는 큰 딜레마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부시의 유엔정책을 진일보시켜 유엔을 강화함으로써 세계경찰의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 입장을 천명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스스로 찬성한 안보리결의 799호를 이행시키려는 조치에 미국이 반대하는 것은 유엔을 통해 세계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논리에 모순된다. 안보리결의 자체는 다른 유엔기관의 결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강제집행을 의미한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할 경우 미국은 유엔과 이스라엘중 택일해야 하는 홍역을 치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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