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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키녹/원인성 런던 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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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키녹/원인성 런던 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3.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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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를 떠난뒤 영국에온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와 영국 노동당의 닐 키녹 전 당수는 몇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김 전 대표가 71년에 이어 87,92년 선거에서,키녹은 87년과 92년 총선에서 쓴잔을 마셨던 패배의 기록이 유사하다.그러나 단순한 「실패의 공유」 이상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두사람 모두 지역감정의 피해자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야 더 설명할 것도 없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영국의 지역감정도 우리 못지않다. 웨일스 출신의 키녹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잉글랜드 주민으로부터 끝내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두번째 공통점은 둘다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시달림을 받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에서도 친보수당계가 지배하고 있는 대중지들은 83년 키녹이 야당 당수가 된 이래 끈질기게 그를 물로 늘어졌다. 키녹에게 따라붙은 「지적능력이 부족하고 신뢰감이 가지 않는 정치인」 「총리감으로선 뭔가 부족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는 상당부분 그를 무자비하게 난타한 대중지의 여론조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 전 대표의 경우에도 군사정권이 뒤집어 씌운 「색깔이 의심스러운 사람」 「정권욕에 불타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세번째는 두사람 다 진보적인 성향의 정치인이며 끝내 중산층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노조를 바탕으로 형성된 노동당의 지도자로서 키녹은 중산층의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당의 노선수정을 주도한 당내 우파였다. 하지만 세금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중산층의 이기심을 허무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농어민과 도시 영세민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했던 김대중씨 역시 변화를 두려워하는 중산층을 두꺼운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집권에 실패한뒤 두사람이 가는 길을 두나라 정치문화의 차이 만큼이나 뚜렷하게 엇갈린다. 키녹은 당수직을 물러난뒤에도 평의원으로 남아 의회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방송토론 등서도 야당 지도자로서 쌓은 경륜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가 이제 50세로 아직 한창 일할 나이가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대처에게 보수당 당수직을 빼앗긴 에드워드 히드 전 총리도 77세의 나이에 평의원으로 남아 의회의 원로역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김대중씨가 이들처럼 「장내의 원로」로 남지 못하고 장외로,그것도 머나먼 영국 땅으로 떠나야했던 것은 우리 정치문화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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