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복·낙태자유화 쟁점/탈냉전시대 외교원칙 “관심”【워싱턴=정일화특파원】 클린턴의 백악관은 그가 선거공약으로 약속한 「변화」를 집행하기 시작했다.
그 1차적 조치로 지난 20년간 끈질기게 버텨오던 일련의 낙태금지 조치를 해제해 낙태 자유주의자들에게 일시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클린턴이 취임 이틀만인 23일 서명한 낙태관련 행정명령들은 첫째 레이건부시 행정부 아래서 금지해오던 연방정부 자금지원 의료기관의 임신중절에 관한 상담규제를 해제한 것이다.
지난 공화당 정부에선 적어도 연방정부의 자금지원을 받고 있는 의료기관은 낙태관련 상담을 일절 못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큰 병원들의 임신중절 의료행위를 막고 있었다.
둘째는 해외주둔 미군 의료기관들이 낙태수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한 것.
공화당 정부는 해외주둔 미군 의료기관의 낙태수술권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셋째는 연방정부 지원에 의한 태아조직의 실험사용을 허용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는 연구에서는 태아조직의 실험사용을 절대 금지하고 있었다.
넷째 클린턴은 유엔의 산아제한운동에 대한 자금지원 금지조치를 해제했다.
유엔의 산아제한운동은 6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 또는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상당히 광범위하게 실시돼 왔으나 미국이 낙태금지원칙의 입장에서 자금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었다.
클린턴은 이같은 금지조치를 해제함으로써 미국이 유엔의 산아제한운동 지원을 할 수 있게 한것이다.
다섯째 클린턴 정부는 프랑스제 임신중절약인 RU 486의 수입금지 조치를 재검토토록 조치했다. RU 486은 프랑스가 개발한 임신중절약으로 태아의 자궁부착 호르몬을 중단시켜 결국 유산을 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 약의 수입을 금지해왔다.
정부차원에서 산아제한운동을 벌여온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의 경우 클린턴의 이번 낙태자유화조치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낙태허용파(Prochoice group) 낙태반대파(Prolife group)로 나뉘어 피나는 투쟁을 벌여온 미국으로서는 이번 조치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클린턴이 낙태자유화조치 행정명령을 서명하던 바로 그 시간에 백악관 앞 타원형 광장에서는 7만5천여명의 낙태 반대주의자들이 모여 클린턴의 조치에 반대하는 격렬한 데모를 벌였다. 이 데모로 3백명 이상이 체포됐다.
클린턴이 지금 막 서명키위해 펜촉을 세우고 있는 또다른 조치는 바로 군대내의 동성연애자를 허용하는 법이다. 사실 그는 취임 첫 조치로 군대내의 동성연애자 추방법을 폐지하려했던 것인데 콜린 파월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고위장성들이 이를 극력 반대해 미뤄왔었다. 그는 25일에 있을 군 고위장성들과의 대담을 끝으로 군 내부의 설득작업을 마무리 지은후 결국 서명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기업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만들었던 「경쟁력위원회」(Council on Competitiveness)는 즉각 페지해 버렸다. 경쟁력위원회는 기업을 특수성,투자위험성 등을 조사해 일정기간 그 기업이 안정세를 유지할 때까지 세금감면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부시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했던 가족휴가법은 2월의 의회 휴회전에 의회에 재상정해 이를 통과시킬 예정이다.
본인 또는 배우자 및 직계가족이 지병 또는 출산 등의 가정적 이유로 휴가를 신청할 경우 무급으로 12주간 이를 허락하도록 하는 법률인데 이 기간의 휴가자는 월급은 받지 않지만 의료보험 대당자로서의 헤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일정기간 후에 제자리로 되돌아 올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부시는 이런 일은 기업 스스로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보았었다. 만일 정부가 굳이 개입해야 한다면 정부는 그 휴가자와 관련된 범위내에서 기업에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것 정도가 합당하다고 주장했었다. 법으로 종업원의 가정휴가를 허용케 되면 생산성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면서 부시는 거부권을 행사했었다.
국제문제에 있어서 클린턴이 「변화」를 시도할 우선순위 지역은 유고에 대한 강경선회이다. 클린턴은 그의 선거유세 기간에 부시 행정부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태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비난하면서 만일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강경책을 펼것이라고 약속했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취임 첫주에 행한 이같은 몇몇 「변화」에의 시도는 그런대로 클린턴이 부시와 다르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이미 라이벌이 없는 세계최강국이 됐기 때문에 과거 미소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처럼 시급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클린턴 행정부는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가 시작된 이후 가장 안전한 시기에 출범하는 정부이다. 따라서 낙태법같은 국내의 도덕적 논쟁거리를 첫 변화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행운을 안고 출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에 클린턴은 냉전해소 이후에 있을 미국외교의 원칙을 정립해야 하는 새로운 부담을 갖고 있다.
또한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국제경제체제를 마련해야 하는 새로운 짐을 안고있다.
아직 변죽만 울리고 있는 클린턴 정부가 「21세기를 향한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미국의 정책을 어떻게 펼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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