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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김대중」/정병진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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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김대중」/정병진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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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물의 영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치앞 조차 내다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기어다니는 벌레만도 못한 미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26일 상오 11시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는 김포공항 국제선청사옆 귀빈주차장에 마련된 자신의 환송식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심경을 짤막하게 엮어서 내놓았다.

그는 불과 한두달 전만 하더라도 지금 이같은 자리에 서있을 줄 몰랐다며 그 의미를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자리를 함께 한 환송객들은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해 지금의 상황에 처했다」는 회한보다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의 한치앞」을 외경하는 김 전 대표의 심경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이를 떨쳐버리려는 듯 몇몇 당원들이 내걸려있던 현수막을 잡아 흔들었다. 「인동초여 7천만 가슴속에 피어나소서」 「후광선생님의 뜻을 영원히 따르겠습니다」. 잠시 플래카드를 바라보던 김 전 대표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이날의 환송식은 김 전 대표를 영국으로 보내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곳을 떠나는 자신들의 지도자를 지켜보는 자리였다. 김 전 대표도 『영국으로 간다』는 표현보다 『한국을 떠난다』는 말을 자주 썼다. 그는 『정치를 떠난다』고 했고 『여러분을 떠난다』고 했고 『이 나라를 떠난다』고 했다.

김 전 대표에게 있어서 「영국유학」은 성취를 향한 적극적 선택이라기 보다는 탈정치를 위한 소극적 선택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 전 대표는 그래서 이날따라 유난히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죄송하기는 떠나는 사람을 지켜보는 쪽에서 더 했을 것이다. 『좀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고 『좀더 노력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막급이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환송이었다. 낮게 깔린 하늘에서 눈이 몇자락 떨어지고 있었다.

이날 환송식에서 김 전 대표는 다시 「선생님」이란 호칭을 되찾았다.

이기택대표도,이름모를 아낙네도 모두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에서 당대표로,또 대통령후보로 불리던 김 전 대표가 다시 「선생님」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정치가 한단계 성큼 올라서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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