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스캔들 충격/일 정계 개혁바람/리크루트·사가와규빈등 “검은돈 치부”/정·재계·국민 자성의 몸부림【동경=이상호특파원】 「정치는 숫자다. 숫자는 돈이다」 정경유착이 특징인 일본 파벌정치는 이렇게 요약된다.
파벌은 힘을 갖기 위해 자파 소속의원이 많아야 하고,많은 의원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대기업이나 각종 이익단체들은 사리를 위해 정치헌금을 하고 정치가들은 파벌을 위해 돈을 받는다.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각종 정치스캔들은 이같은 악순환구조의 산물이다.
이러한 일본정치에 최근 개혁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자민당은 지난 8일 정치개혁 추진본부를 발족시켰다. 본부장에 취임한 미야자와(궁택희일) 총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지금 근본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오랜기간 국가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대의 정치과제』라고 강조했다.
단순 소선거구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개혁은 ▲선거법 개정 ▲정치자금 규제법 개정 ▲정치자금을 공개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정당 교부금 제정 ▲선거구의 구분을 결정하는 구획위원회 설치법의 제정 등이 골자다.
지난 20년간 일본정치를 사실상 지배했던 자민당내 다케시타(죽하)파가 분열되면서 뛰쳐나온 하타(우전)파가 내세우고 있는 명분도 정치개혁이다. 당시 언론들은 「다케시타파의 분열로 일본정치는 개혁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썼다. 이 파벌의 하타 회장은 현재 주요도시를 돌며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다.
만년 집권당인 자민당이 「자기 살 베어먹기식」의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국민의 원성 때문이다.
국민들의 태도는 불신을 넘어선 혐오상태로 「이제 정치도 바꿔보자」는 여론이 몰아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스스로 「경제 1등,정치 3등」이란 말을 곧잘 한다. 지난 91년 11월 연임이 확실시됐던 가이후(해부준수) 총리가 물러났다. 국회에서 정치개혁법이 폐지되자 「중대결심」 발언을 했다가 다케시타파의 미움을 받은 결과였다. 당시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50%를 훨씬 넘었고 이 때문에 외국언론들은 일제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불가사의한 퇴진」이라고 논평했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변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재계 초유의 공개적인 정계개편 요구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연합회(경단연)는 지난 4일 「93년도 활동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경제사회,특히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지금까지의 자민당 일변도의 지원에서 전환할 것임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정·관·재」의 세톱니바퀴가 기가막힐 정도로 잘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일본에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사건이다.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자민당에게 비록 야당으로 전락하지는 않더라도 연립정권을 구성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몰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안겨줬다.
국민의 정치개혁요구는 사가와규빈(좌천급편) 사건이 기폭제다. 이 사건은 정치와 돈의 유착관계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당시 정계 실력자였던 가네마루(김환신) 전 자민당 부총재는 사가와규빈의 와타나베(도변광강) 전 사장으로부터 5억엔을 받아 자파소속 의원들에게 나눠줬다. 전 총리·각료들도 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 사건으로 가네마루는 부총재직을 사임했다.
그가 돈을 받은 것은 더욱 이 리크루트 스캔들로 다케시타 총리가 퇴진한 때였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검찰의 태도였다. 다나카(전중각영) 전 총리의 구속 등으로 「일본의 양심」으로까지 불렸던 동경지검 특수부가 가네마루에게는 20만엔의 벌금부과로 그쳤다. 일부에서는 리크루트 사건으로 혼이 났던 다케시타파가 그후 법무장관만은 반드시 자파의원으로 임명,꾸준히 「순치」시킨 결과라는 비난도 했다.
국민당은 검찰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청사간판에 페인트통을 던졌으며 가두에서 가네마루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계속했다.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으며 각 지방의회들은 의원직 사퇴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시민들중 일부는 『나도 가네마루처럼 해명서를 보내겠다』며 경찰출두를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킹메이커」 가네마루 전 부총재는 의원직을 사임했으며 국회 증인심문을 받아야만 했다.
사가와규빈 사건은 또 정치와 우익 폭력단과의 어두운 관계를 여실히 폭로했다. 이른바 황민당 사건이다.
지난 87년 총재선거 당시 황민당은 다케시타를 비난하는 가두선전을 벌였으며 이를 겁낸 다케시타측은 와타나베 전 사장에게 이의 중단을 부탁했고 와타나베 전 사장은 대표적 폭력조직인 이나가와(도천)회의 이시이(석정진) 회장에게 간청,가두선전을 중단시켰었다.
와타나베 전 사장은 스스로 『다케시타 정권 창출의 최고민간인 공로자』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다케시타의 의원직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고향사람들이 대거 상경,다케시타 집앞에서 시위했다. 지난 성탄절에는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시민단체 대표가 그동안 모은 사임요구서를 명부를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그도 역시 여론에 밀려 국회 증언석에 서야했다.
물론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일본 국민들의 요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지난 88년 리크루트 사건 때에는 정치개혁의 목소리가 절정에 달했었다.
그 당시 대장성 장관이었던 미야자와 총리도 그 사건에 연루돼 사퇴했었다.
당시에도 자민당은 「정치개혁대강」을 마련하는 등 법석을 떨었으나 그 이후에도 각종 스캔들은 이어졌다. 때문에 이번에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관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국민들이 이제는 확실하게 부패의 청산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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