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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경제전쟁(기술로 이긴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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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경제전쟁(기술로 이긴다:17)

입력
1993.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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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인양성 말뿐… 푸대접 큰문제/대학생 연구교육비 선진국의 5∼10%선/기업체선 단기성과 요구… 승진에도 차별7조원 가량의 돈을 들여 고속전철을 건설하고 70여억원을 투자,인공위성을 띄운다는 등 과학기술에 관련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국내 기술인들은 좌절감만 맛보곤 한다. 막상 기술한국의 짐을 지고 현장에서 뛰고 있는 그들 자신의 모습은 화려한 정책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과대학을 졸업해야 현장에서 별 쓸모가 없는 낙후된 기술교육 여건,연구실 운영비가 아쉬워 외부의 겉핥기식 프로젝트를 거절하지 못하는 열악한 연구여건,연구원의 임금을 아끼기 위해 정부출연 연구소마저 정식 연구원들을 잘라내고 임시직으로 채워가는 현실 등에 비춰 볼때 그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국내 기술인들에게 사치스러운 「과시용」 행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한해 공대졸업생 수는 인구 10만명당 76명정도. 일본의 62명,미국의 25명 정도보다는 월등히 많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는 선진국 수준의 5∼10% 선에도 못미치며,공과대학을 졸업해도 40%정도는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연세대 박홍이교수는 『현재 국내 공과대 교육여건으로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학생을 양성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우라나라의 기술정책이 빗나가 있다는 것은 국내의 박사급 연구원들의 80% 가량이 대학에 몰려있는데도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은 빈약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연구진들은 자신의 전문성,연구의 지속성,기술축적 등을 위해 단기성과를 기대하는 기업체에 가지 않고 대학 연구실에 남아있다. 기술인력을 키우지 않고 단기적으로 개발성과가 없으면 기술자를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등 기술자 경시풍토가 기업체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박사급 연구원들은 그래도 낫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투입되었거나 공고·전문대 등을 나와 현장의 기술자로 일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많이 좁혀지기는 했지만 일반 사무직 직원에 비해 임금이 차이나고 승진에도 한계가 있다. 기술자가 임원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기술자로 입사해서도 기를 쓰고 일반직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기술자가 현장에서 빠져나가려 하니 기술축적이 될 까닭이 없다.

우리나라의 기술인에 대한 푸대접은 아직도 국내 기술로 생산되지 않는 NC(수치제어) 공작기계와 로봇을 지난 80년에 개발했던 일본 화낙사의 기술고문 이봉진박사의 경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67년 동경대 기계과 대학원을 졸업한 이 박사는 지난 76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NC 공작기계 시제품을 개발한데 이어 세계적으로도 로봇을 개발해낸 장본인.

그러나 이 박사는 정부관련조직의 통폐합으로 KIST 연구팀장에서 밀려나고,그의 기술을 부러워하던 일본의 화낙사로 옮겨가게 됐다. 당시 함께 연구했던 연구진들은 모두 외국유학을 떠나거나 개인사업,민간연구소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박사는 『기술을 계속된 축적과정으로 보지않고 누구든지 자리에 앉혀놓기만 하면 해낼 수 있다는 정부의 인식으로 기술계에도 낙하산식 인사가 자행돼 기술인을 내쫓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기술과 기술자에 대한 이같은 잘못된 인식이 우리기술을 발전시키키는 커녕 후퇴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요체는 사람을 키우는데 있다』는 것이 이 박사의 지론이다. 일본이 기술에서 미국을 앞설수 있었던 것도 기술인을 열심히 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 스스로 키운 기술자를 최고의 기업자산으로 인식할 때만이 기술개발이 가능하다.<유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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