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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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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류와 교훈(부패와의 전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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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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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없는 수사/불의 부정추방/비리혐의 하원의장 기소­집권당 수색/지방판사,권력층과 대항/「에이즈 수혈 파동」 총리까지 기소/정치자금 제한등 특별법 제정도【파리=한기봉특파원】 『르노반 루임베크 판사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법과 권력의 한판대결이 벌어졌다. 상대는 무명의 한 젊은 지방 수사판사와 정치권력 서열 3번째인 하원의장. 대결의 초점은 88년 대선 당시 집권 사회당의 불법 정치자금 조달에 관한 것이었다.

정가를 뒤끓게 한 이 대결은 아직 마지막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은 당시 한 신문의 제목처럼 수사결과 보다는 이 판사가 권력의 반발과 저항에 맞서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렸다.

그가 어떤 유무형의 압력을 받았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지난해 9월 그는 마침내 하원의장을 기소했다. 공판은 올봄부터 열린다. 그는 기소후 『나는 정직하게 일할 뿐이며 어떤 정치적 논쟁과도 무관하다』고 말했다.

「위르바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의 발단은 90년 6월 르망지역 한 공공건물 공사장에서의 인부 실족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렌느지방법원의 티에리 장 피에르 판사는 사고원인이 안전을 무시한 부실공사에 있으며 이는 공사수주를 둘러싼 뇌물수수가 관련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어 「위르바」 「사즈」라는 두 건설용역회사의 비자금이 사회당 창구로 흘러들어갔다는 혐의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91년 4월 그는 파리에 있는 위르바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는 이 날자로 형사소송법 절차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직무 해임됐다.

루임베크 판사는 바로 피에르 판사의 후임이다. 그는 벽에 부딪친 이 사건을 다시 원점에서부터 정밀히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14일 전격적으로 사회당 중앙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프랑스 정가와 사회에 엄청난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

루임베크 판사는 기업들이 88년부터 91년까지 가짜 영수증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공공공사 수주의 커미션,뇌물 등 8백여만프랑(12억여원)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당시 사회당의 재정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엠마누엘러 현 하원의장이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자금조성에 관련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고 그를 소환키로 결정했다.

사회당은 즉각 반발했다. 베레고부아 총리는 이같은 주장을 일축하고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정치인들 언론을 통해 사전에 매장하는 태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루임베크 판사는 그러나 하원의장을 소환한데 이어 지난해 9월14일 그를 포함,정치인 지방관리업자 등 40여명을 기소,사회당에 큰 정치적 타격을 안겼다.

지난해 프랑스에는 유난히 많은 정치인들의 부정스캔들이 꼬리를 물었다. 주로 자신이 시장을 맡고 있는 지역에서 지위를 이용한 영향력 행사와 이 과정에서의 떳떳지 못한 거래 등이 대부분이었다.

사회당의 많은 정치인이 관련된 이같은 스캔들은 루임베크 판사가 아니더라도 정치권력의 치부에 맞서 의연하게 직분을 수행하고자 한 많은 수사판사들에 의해 파헤쳤다.

프랑스의 사법제도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수사판사(예심판사)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이들은 공소에 앞서 사건을 초동수사하는 검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대중적 인기가 매우 높은 자수성가형 기업인 출신 베르나르 타피 도시문제장관이 자신의 거래회사와의 소송과정서 사기와 위조행위가 드러나 사임했다. 제2야당의 정치인인 프랑수아 레오타르 전 법무장관도 공공사업 시행과정에서 영향력 행사와 관련,정치적 타격을 입는 등 많은 정치인이 현재 조사를 받거나 기소돼 있다.

정치인의 직접적인 부패행위가 아니더라도 직무와 관련한 비도덕성과 직무유기의 문제 역시 지난해 프랑스 전역을 부패논쟁으로 들끓게 한 주제였다. 여론은 오히려 이를 더 심각한 부패로 받아들였다.

미테랑 사회당 정부 최대의 스캔들로 비화된 정부기관의 오염된 혈액공급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의 합법적 독살』이라고까지 표현된 이 사건은 지난 85년 국립혈액센터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임을 확인하고서도 아무런 조치없이 이를 혈우병 환자들에게 수혈하거나 유통시킨 충격적인 사건이다.

결과는 지금까지 2백73명이 에이즈에 감염돼 사망했고 1천2백50여명이 감염돼 죽음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 잡지의 추적과 피해자 가족의 고소로 시작된 이 사건은 10월말 공판에서 당시 혈액센터 소장과 보사부 국장급 고위관료 등 3명이 실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일단 매듭지어지는듯 했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보다 책임있는 정치인에 대한 단죄,즉 국가의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논란의 핵심은 각료의 성역적인 사법처리에 관한 것이었다. 여론은 당시 총리였던 파비우스 현 사회당 제1서기와 당시의 사회문제장관,보사부차관 등 3명이 「사실상의 공범」이라는 쪽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헌법상 각료의 재임기간중 범죄사실은 상하 양원의 기소동의에 이어 24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사법 고등법원에 의해서만 심리하게 돼있다. 이는 사실상 정치인이 정치인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절차로서 5공화국이후 한번도 열리지 않아왔다. 사법적 판단보다는 정당간의 정치적 이해와 계산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여론과 야당의 공세는 결국 지난해 11월 미테랑 대통령이 헌법 개정을 발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각료에 대한 기소도 국가반역죄 등을 제외하고는 일반 형법에 준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파비우스 전 총리의 사법적 심리 필요성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미테랑의 황태자」로 불려온 파비우스는 「위급한 인명구조 위반죄」로 사법고등법원에 최초로 기소된 정치인이 됐다.

최고위급 정치인부터 국회의원·기업가·언론인들까지 관련된 일련의 부정과 반도덕적 사례는 미테랑 제2기 출범이후 확산돼 프랑스사회에 총체적인 부패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조시켜왔다.

베레고부아 총리는 지난해 4월 취임시 프랑스 사회의 도덕성 회복이 가장 큰 과제라고 선언하고 『부패의 종양을 도려내겠다』고 다짐했었다.

총리의 지시에 의해 임시 설치됐던 부폐예방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라 정부는 이른바 강력한 「부패예방 및 경제공공사업의 투명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우여곡절 끝에 하원에서 수정 통과했다.

법안의 핵심은 기업이 선거의 후보나 정당에 선거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야 모두의 반발로 기부는 계속 가능하지만 신고돼야 하며 정당 선거자금의 25%가 넘을 수 없다고 수정되고 말았다. 이밖에 정부내 독립적인 부패방지위원회의 설치와 공공사업의 시행과 관련,엄격한 심의와 절차 등이 보강 제정됐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사후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회의적인 것 같다. 르몽드지는 『프랑스 정치학 사전에 이미 부패가 등장했다』고 꼬집었다. 렉스프레스지는 『민주주의는 부패하기 쉽고 부패를 창조한다. 그것은 공적인 시장을 통해 거대한 이해관계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이는 인위적인 부정부패 척결을 부르짖는 정권이 속으로는 가장 썩었다는 이율배반을 역사가 수없이 증명해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 지방법원 수사판사의 외로운,그러나 신념에 찬 노력은 아마 가장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공인 개개인이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것만이 구조적이고 권력이 개재된 현대의 부패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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