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보다 경제재건 주력 다른 점『신이여,그와 같은 젊은이를 다시 우리에게 보내주소서』
고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오나시스는 케네디 암살 10주기인 73년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새로운 케네디」의 출현을 이렇게 기원했다.
이제 재키의 기도는 남편의 뒤를 이은 또다른 40대 기수 빌 클린턴 대통령의 등장으로 마침내 실현됐고 미국사회는 「케네디시대」의 꿈과 이상을 그리며 다시 변화의 몸짓을 시도하고 있다.
대권경쟁 선언 직후부터 클린턴은 케네디와 자주 비교됐다. 두사람은 우선 젊다는 이미지와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공통분모로 지니고 있다.
케네디가 주장했던 뉴 프런티어 정신과 클린턴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새로운 맹약」(New Covenant)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뉴 프런티어 정신은 미 국민들에게 각자 개인의 능력발휘에 대한 신념을 불어넣으며 2차대전 승리이후 정체된 미국사회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했다. 반면 경제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맹약」의 이념은 국민 모두가 단합해 『미국을 다시 태어나게 하자』는 호소로 요약할 수 있다.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자는 대국민 메시지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이같은 유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케네디식 구호와 연설,제스처 등을 그대로 모방하기도 했다. 요컨대 케네디시대에 대한 국민적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자신의 지지표를 더 끌어 모으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이 처한 시대상황은 사뭇 다르다. 클린턴이 모든 정책면에서 케네디와 같은 궤적을 밟아가리라는 분석은 섣부른 예단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케네디가 등장했던 60년대의 미국사회는 최고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비록 트루먼아이젠하워로 이어지는 공화당 집권기동안 사회적 역동성은 다소 침체해있긴 했으나 미국은 양극 체제의 주역으로 세계의 경제·군사질서를 주도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클린턴을 무대에 올려놓은 90년대의 미국사회는 쇠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적대국 구 소련의 해체,걸프전의 승리,유일한 세계경찰국가로서의 위상확보 등 번듯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는 바닥을 기고 있고 사회기강도 엉망이다.
실제로 케네디는 내치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 역시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위한 혁신적 국내 정책입안을 내놓기는 했으나 정책기조의 무게중심은 쿠바위기 및 베트남 확전 등 외교쪽에 쏠려 있었다.
이에 반해 클린턴시대의 최대 현안은 경제이다. 클린턴 자신도 미국이 유일 대국의 위상을 고수하기 위해선 군사력보다 경제력의 고양이 더 시급하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세계의 보호자」라는 타이틀은 일단 유보하고 「우리의 환부부터 고치자」는 명제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3년 댈라스에서 케네디가 암살당한 이후 미국과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월남전의 패배는 미국사회에 깊은 좌절을 안겨주었으며 이는 후에 레이건부시 행정부의 감성 외교전략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클린턴 정부는 누적된 예산적자 등 달갑지 않은 짐을 안고서 변화의 시대를 헤쳐가야만 한다.
이같이 열악한 통치환경에서 출발하는 클린턴이 지지자들의 기대처럼 「케네디신화」를 재창출할지 여부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인의 관심사이다.<김영걸기자>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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