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자금 “별따기”/수요 느는데 지원은 오히려 줄어/담보요구에 절차까지 복잡/그나마 연줄없인 그림의 떡/관리·집행부서 분리돼 효율성도 결여기술자는 대체로 돈벌이에 약하다. 공부하고 연구만 하느라고 돈을 모른다. 그래서 각 나라 정부는 신기술개발에 돈을 대준다.
미국은 주로 정부보다는 민간기업과 수많은 연구재단에서 기술자금을 지원해주고 일본은 민관 합동으로 신기술을 개발해내고 기업은 이를 재빨리 상품화해낸다. 경쟁국 대만은 일본과 같이 민관 합동으로 하되 주로 정부주도다. 대만 정부는 청년사업가 지원단이니 중소기업 기술협력단이니 하는 기관을 통해 가난한 기술자들에게 기술개발자금을 충분하게 대준다. 대만은 정부뿐만 아니라 은행 기업이 모두 기술자 지원에 열성이다. 70년대초에 우리에 밀리던 대만이 90년대 들어 우리를 완전히 따돌리고 앞서 나가는 것도 기술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선 기술자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입국을 외치고 있지만 기술개발 지원자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상공부가 신소재 생명공학 정밀화학 등 참단기술분야에 개발자금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공업발전기금은 91년 5백21억원에서 92년 5백20억원으로 소폭 줄어든데 이어 올해는 4백억원으로 감소했다. 이 자금은 연리 6.5%에 2년거치 3년 분할상환의 좋은 조건으로 정부의 기술육성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는 자금이다. 그 자금이 줄고 있으니 정부는 말로만 「기술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댄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도산위기에 몰린 신발 섬유업종 등에 대한 지원(합리화자금)이 늘어 기술자금은 그만큼 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무상으로 또는 싼금리로 빌려주는 기술개발지원 재정자금의 총규모는 90년 3천59억원에서 91년 2천3백33억원으로 감소했고 92년엔 1천7백90억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전체 기술금융에서 정부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91년 현재 16%선으로 40%선인 선진국은 물론,동남아 경쟁국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융기관의 총대출금에서 차지하는 기술금융의 비중은 1.1%,정책금융 중 기술금융 비중은 3.4%로 역시 모두 최하위 수준이다.
줄어드는 자금 못지않게 그 자금을 얻는 과정도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다. 연고에 치우친 대출심사와 담보요구 풍토때문에 중소업체에 기술금융은 그림의 떡이다. 산업은행의 기술개발자금은 대출자금에 대해 1백20%의 담보를 요구하고 융자액의 20%는 채권을 살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같은 까다로운 절차로 공업발전기금의 경우 매년 당초 책정된 자금의 70% 정도만이 대출되고 있다. 부족한 자금조차 전액 대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기술자금은 관리 및 집행부서가 재무 상공 과기처 등 3개 부처로 나누어져 있어 효과적인 운용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런대로 기술개발에 도움을 주었던 기술금융회사와 창업투자회사들도 지난해부터는 지속되는 불경기로 자금지원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창투사들은 문을 닫을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다.
인공지능을 이용,불량품을 자동검색해내는 시스템을 개발해 사업체를 차린 이모씨(32)는 지난해초 상공부에 공업발전기금 대출신청을 하러 갔다가 무안을 당했다. 기금 얻기가 까다롭다는 소문을 듣고 미리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유망하다는 보증서까지 받아갔지만 담당자로부터 기금규모 자체가 적은데다 이미 유명기업을 중심으로 내정된 상태라 곤란하다는 설명만 들었다. 나중에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연줄이 없으면 기금을 탈 수 없다는 업계의 얘기를 듣고 여기저기 청탁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씨는 결국 부모의 집과 땅을 담보로 은행빚을 내 사업을 꾸려가고 있지만 엄청난 이자부담으로 별재미를 못보고 있다. 이씨는 특히 은행이든 정부든 담당자를 설득하는게 가장 큰 고충이었다며 요소요소에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나라는 기술을 천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기술의 싹을 꺾는 풍토』라고 털어 놓았다.
서강대 김광두교수는 『기술투자는 성공할 확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더라도 자금 회임기간이 길어 민간금융기관보다는 정부지원 중심으로 이뤄지는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기술개발을 위한 정부 재정자금의 축소는 경제발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기술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선 각 부처로 분할된 관리업무의 일원화와 함께 기술자금 규모의 확충,전문금융기관의 설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이백규기자>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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